등록 : 2008.03.30 19:33
수정 : 2008.03.30 19:33
사설
총선 선거전이 치열해지면서, 지역정서에 기대 표를 얻으려는 발언이 어김없이 고개를 들고 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대구 유세에서 “티케이(대구경북)는 15년간 엄청난 핍박을 받았다. 한나라당을 뽑으면 그동안 피해 본 것을 다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충남에서 “이번 총선일은 충청의 자존심을 찾는 날이다. 곁불을 쬐지 말고 똘똘 뭉치자”고 호소했다.
두 사람이 각기 핵심 지지기반인 지역에서 이런 발언을 한 이유를 헤아리는 건 어렵지 않다. 지금 충청권에선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이 각축하고 있다. 대구·경북에선 한나라당의 절대 우세가 흔들리며 곳곳에서 무소속 후보들과 접전을 벌이고 있다. 지지자들을 다잡아 그 지역을 석권하려면, 지역감정에 기대는 것만큼 쉽고 확실한 방편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비슷한 행태는 호남에서도 나타난다. 전남 목포에 출마한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디제이(김대중 전 대통령)가 목포에서 성장해서 대통령이 됐는데, 오늘 어떤 위치가 됐느냐”고, 전남 무안·신안에 나선 김홍업 의원은 “지금의 민주당은 디제이가 만들고 호남이 지켜낸 그 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나서면서, 김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호남 정서를 부추겨 선거에서 이기려 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정당들이 나름의 지역적 기반을 갖는 경우가 많긴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그 지역 출신 정치인과 특정 정당만 일방적으로 밀어주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우리 정치의 ‘지역 문제’가 훨씬 악성인 이유는, 특정 지역 출신의 정치인이 이를 이용해 정치적 성장을 꾀하고 권력을 잡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려 한다는 데 있다. 통합보다는 분열을 통해 정치적 이익을 꾀하는 것이다. 지역정서에 기대려는 정치인들에게 더욱 엄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대 당의 세가 강한 지역에선 대선후보의 유세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었던 게 불과 10~20년 전 일이다. 그 폐해가 우리 사회 각 부분에 어떻게 미쳤는지를 기억해내는 건 힘들지 않다. 책임있는 정치인이라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선거에서 지역 문제를 활용하려는 행태를 그만둬야 한다. 또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후보나 정당에게 유권자들이 표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 정치는 지역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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