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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31 20:01 수정 : 2008.03.31 20:01

사설

금융위원회가 어제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업무보고에서 금산분리 원칙을 사실상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은 무원칙한 친재벌 정책의 결정판이다. 금산분리란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하는 것을 막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칸막이를 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재벌이 은행을 갖도록 하고, 보험회사 같은 비은행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지금의 재벌체제 그대로 합법화하는 길을 터주려 하고 있다. 기업의 여유자금을 금융산업으로 끌어들이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금융회사를 육성해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자면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이는 현실의 문제점을 외면한 것으로, 재벌을 위한 금융정책과 다름없다. 금융산업의 발전은커녕 시장질서의 건전성과 안전성을 위협해 외환위기 이후 힘들게 이뤄 온 금융시장의 투명성 제고 노력마저 물거품으로 만들 것으로 우려된다. 엊그제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폐지하고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제한 완화, 지주회사 요건 완화 방침을 밝혔다. 재벌의 규모는 더 커지고 지배력은 더 확장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제 금산분리 원칙까지 훼손해 확장 영역의 경계를 아예 없애다시피 했다.

금융위는 1단계로 사모펀드와 연기금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하고, 2단계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한도를 10% 정도로 높이며, 3단계로 지분제한을 없애겠다고 한다. 사회적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핵심인 2단계를 1단계와 동시에 시행할 수도 있다고 밝혀, 재벌의 실질적인 은행 지배는 1~2년 안에 급속히 진행될 수도 있다. 산업자본의 비은행 금융사 소유로도 문제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은행까지 소유를 허용하면 사금고화 등 문제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감독당국이 국제표준을 강조하지만 세계적인 은행들이 산업자본의 직접 지배 아래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투명성과 위험 관리 능력 없이 덩치만 키우고 산업자본의 지배를 허용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을 더 키우는 꼴이다. 금산분리로 말미암아 외국자본은 활개치고 토종자본만 발목이 잡혀 있다는 주장도 펴는데, 사실이 아니다.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은 산업자본이지 토종자본이 아니다.

은행을 제외한 보험·증권 등 비은행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체를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몇몇 재벌에 특혜를 주는 것이다. 특히 삼성에 대해서는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의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가 되어 삼성생명(금융 자회사)-삼성전자(비금융 손자회사)의 출자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승계구도를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우리 금융시장도 많이 투명해졌기 때문에 사전 규제 대신 사후 감독으로 전환하겠다는 발상은 삼성 비자금 사건에서 목도하는 현실을 외면한 처사다. 무원칙한 친재벌 정책은 또다시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를 불러왔던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과 방만한 경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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