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31 20:07
수정 : 2008.03.31 20:07
사설
상대를 믿지 못하면 목소리부터 높이게 된다. 김태영 합참의장의 북한 핵 공격 대책 발언을 둘러싼 남북 사이 논란이 바로 그렇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하고 진실에 입각해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태도다.
김 의장이 지난 2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발언은 신중하지 못했다. 북한의 핵 공격이라는 상황을 가정하고 대책을 묻는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구체성을 띤 답변을 한 것 자체가 섣부르다. 그런 발언이 일으킬 수 있는 파장을 생각지 못했다면 안보의 다양한 측면을 조율해야 하는 고위 군 지도자로서 미숙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의장이 이후 설명했듯이, 그의 발언은 전쟁 때의 ‘일반적 군사조처’를 언급한 것이지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선제타격을 말한 건 아니다. 실제로 상대의 핵 위협을 이유로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나라는 지금 지구상에서 미국뿐이다.
따라서 김 의장 발언을 ‘선제타격 폭언’으로 규정하고 사과와 취소를 요구한 북한군의 지난 29일 전화통지문은 적절하지 않다. 북쪽은 김 의장 발언의 진의를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공개적인 선전포고와 다름없는 무분별한 도발행위”라고 비난부터 했다. 북쪽은 특히 “남쪽 당국자들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전면 차단하는 단호한 조처를 취하게 될 것”이라며 남북관계를 볼모로 삼았다. “우리식의 앞선 선제타격이 일단 개시되면 불바다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다”는 북쪽 발언은 냉전시절로 되돌아간 느낌마저 준다. 북쪽이 의도적으로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시대착오적인 도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남북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우선 남쪽은 김 의장 발언의 진의를 북쪽에 잘 설명해야 한다. 북쪽을 무시하거나 대응을 늦춰서는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북쪽은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합리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사태를 과장해 일상적 남북관계까지 왜곡시키는 태도는 불신만 키울 뿐이다. 성실한 의사소통 노력이 양쪽에 두루 필요한 때다. 소모적 논란을 계속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일과 별개로 정부는 강경기조 대북정책을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이번 일이 불거진 한 원인도 북쪽이 김 의장 발언을 대북정책의 일부로 오해한 데 있다. 대결을 지향하는 대북정책은 분란을 키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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