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03 22:49
수정 : 2008.04.03 22:49
사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오늘 삼성 특별검사팀에 나와 조사를 받는다. 보통의 수사 사례에 비쳐보면, 특검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특검팀도 추궁하고 확인할 내용이 많다며, 필요하면 다시 부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특검팀 수사를 지켜본 바로는 그리 미덥지 않다.
특검은 앞서 ‘이(e)삼성 사건’과 관련해 이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를 소환했지만, 고작 한나절 조사한 뒤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사건 관련자의 절반 이상은 아예 조사도 하지 않고서 그런 결론을 내렸으니, 소환은 시늉이었을 뿐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엊그제는 이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씨가 출석해 6시간 정도 조사를 받은 뒤 여유있는 표정으로 귀가했다. 계열사 분식회계 등으로 조성된 비자금을 값비싼 미술품을 사들이는 데 썼다는 의혹이 이 정도 조사로 풀렸는지 의문이지만, 특검팀은 그를 다시 부를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제 이 회장에 대해서까지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는다면, 삼성 특검은 이 회장 일가한테 면죄부를 주는 구실만 하는 셈이 된다. 특검의 활동시한이 불과 보름 남짓 남았으니 더욱 걱정스럽다.
삼성 관련 의혹에는 쉽게 부인할 수 없는 증거들이 있다. 여러 회사 명의의 사채 발행이 복잡하게 얽힌 경영권 불법 승계는 회장의 직할 조직인 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가 기획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산을 물려주는 처지인 이 회장이 이를 몰랐다는 삼성 주장은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비자금 조성 의혹도 차명계좌들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아니라고 하기 어려워졌다. 정·관계 불법로비 의혹에는 ‘회장 지시 사항’이라는 문건까지 있다. 이런 증거들을 두고 삼성 쪽의 ‘꼬리 자르기’식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무리다. 특검 수사가 ‘조사는 했다’는 핑계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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