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04 19:53
수정 : 2008.04.04 19:53
사설
송금 수수료를 내리라고 은행권을 압박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행태는 여러모로 부적절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부작용을 빚었던 ‘5공 청와대’의 구태를 보는 듯하다.
민정수석실은 최근 은행연합회를 통해 은행들에 ‘송금 수수료가 과도한 데 대한 인하 방안을 마련해 조처하라’고 통보했다. 다음주까지 낮추라고 기한을 밝혀 은행들이 부랴부랴 수수료 인하에 나서고 있다. 전형적인 관치금융이다. 관치금융은 금융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시장의 자율성을 해친 주범이다. 청와대가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무엇보다 강조한 것과도 모순된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 수수료나 금리를 관련 근거 없이 올리고 내리는 이른바 ‘창구지도’를 없애겠다”고 했는데, 민정수석실의 창구지도로 금융당국의 다짐은 빈말이 되고 말았다.
민정수석실은 은행 수수료가 높다는 민원이 들어와 이런 조처를 했다고 해명했다. 그렇더라도 경제수석실이나 금융당국에 넘겨 문제를 면밀히 살핀 뒤 해법을 찾도록 하는 게 순리다. 민정수석실이 이런 식으로 해결사인 양 설치고 나서면 혼선을 키우고 부작용을 빚기 십상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관에서 관여한 느낌이 나지 않도록 은행연합회와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각각 송금 수수료를 내리는 형식을 취하라”며 “일체 오해의 소지를 차단하라”고 방법과 보안까지 지시한 점이다. 떳떳하지 못하고 무리가 있음을 알고도 입을 막고 팔을 비틀듯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민정수석실은 민원, 여론 파악 외에 사정 업무를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그 권한이 막강하다. 그런 만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엄정히 가려서 해야 한다. 나서서는 되지 않을 일까지 이런 식으로 개입하기 시작하면 잘못된 눈치 보기와 줄세우기 풍토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물의를 일으킨 관계자들을 엄중 문책하고,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게 처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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