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06 19:49
수정 : 2008.04.06 19:49
사설
북한과 미국의 6자 회담 수석대표가 내일 싱가포르에서 다시 핵 협상을 한다. 두 사람이 지난달 중순 제네바에서 만난 지 20여일 만이다. 핵 신고 및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둘러싼 교착상태를 타개하려는 미국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북한 또한 적극적이다.
미국 국무부 쪽은 “이번 회담에서 최종적 해결이 있을 것으로 고대하지는 않는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회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에 최종 합의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두 나라는 6자 회담에 제출할 공식 신고서와 둘 사이에만 주고받을 비밀 의사록을 구분하기로 이전 회담에서 합의했다고 한다. 실질적인 북한 핵능력의 거의 전부라고 할 플루토늄 핵 활동과 관련된 내용은 6자 회담에서 다루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및 해외 핵 협력설은 둘 사이에서 처리한다는 것이다. 차선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회담에서는 비밀 의사록에 어느 정도 내용을 담을지를 두고 집중 협의가 이뤄질 듯하다.
지금 미국이 명심해야 할 점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핵 협력의 실체가 어떻든 현존하는 위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확인하기 힘든 의심을 입증하는 데 너무 높은 기대치를 설정하면 전체 협상을 왜곡해 실익을 놓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과거 유엔이 이라크 내 시설을 여러 차례 사찰했으나 증거를 찾지 못했음에도 미국은 이라크의 핵 활동을 강변한 잘못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합리적 설명으로 미국을 이해시켜야 하는 건 당연하다. 진실에 입각해 성실하게 설명한다면 어떤 후폭풍도 겁낼 이유가 없다.
우리 정부가 핵 신고 협상에서 방관자와 같은 태도를 보여온 것은 심각한 문제다. 북-미 협상이 결렬된다면 한국이 그 부작용을 가장 크게 뒤집어쓸 수밖에 없고, 협상이 잘되더라도 그에 맞춰 급하게 움직여야 하는 구도다. 게다가 정부는 남북관계를 핵문제 진전과 연관시킴으로써 협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렛대를 스스로 포기했다. 이런 태도가 남북관계의 안정성을 심하게 해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과 북한이 큰 의지를 보이는 만큼 이번이 아니더라도 곧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음 단계에서는 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북-미 관계 정상화 등 굵직한 현안들이 동시에 논의된다. 북한·미국의 결단과 더불어 우리 정부의 각성이 요구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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