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10 21:50
수정 : 2008.04.10 21:50
사설
총선 이후 ‘이명박식 경제 살리기’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를 비롯한 여러 정부 부처에선 여당이 과반 의석을 얻었으니 감세와 규제완화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어제 “총선도 끝나고 과반도 만들었고 하니 좀더 가속을 내서 열심히 일해서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결과를 나오게 해 달라”고 말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감세와 규제완화로 기업 투자를 부추기고, 대운하 사업 등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방향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지금 우리 경제의 대내외 여건은 매우 좋지 않다. 대외적으로는 미국발 신용위기와 그에 따른 세계경기 둔화, 국제유가 및 원자재값 상승, 환율 불안 등 여러 악재가 겹쳐 있다. 이런 때일수록 경제운용 기조를 안정으로 가져가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내실을 다져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무리하게 성장 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하다간 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아주 큰 상황이다.
법률 개폐가 필요한 감세, 출자총액 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등은 새 국회가 열리는 6월 중에 무더기로 상정할 것으로 보인다. 말이 친기업이지 이런 정책들은 재벌 입맛에 맞춘 친재벌 정책들이다. 섣부른 규제완화는 경제 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중소기업계는 규제완화가 재벌들의 중소기업 땅 뺏기로 귀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재벌 규제완화에는 적극적이면서 인수위 때 핵심 국정과제로 발표한 ‘중소기업 하도급 거래감시 강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강화’는 실행방안을 내놓지 않아 흐지부지되는 현실은 안타깝다. 시장원리를 내세워 재벌의 문제점을 덮고 마음대로 하게 놔두면 중소기업은 설자리를 잃고 ‘시장독재’에 이를 것이다.
10대 그룹이 지난해 말 쌓아둔 잉여금은 자본금의 8배인 166조원에 이른다. 이런 돈을 놔두고도 투자를 하지 않았는데, 감세한다고 투자 활성화가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종부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도 투기 수요와 불로소득을 차단하고자 여야 합의로 도입된 것이다. 건설경기를 살린다며 부동산 세제에 손을 대면 땅값·집값 상승을 부추겨 서민들의 고통만 커진다.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를 겪고 과도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 온 우리 경제는 양극화 해소와 체질 개선이 핵심과제다. 이런 문제들은 친재벌 정책과 경기부양책으론 풀 수 없다.
국민 여론은 대운하 반대에 있다
국민 여론이 대운하 사업에 부정적이어서 한나라당은 이를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지도 못했다. 대운하 전도사를 자처했던 중진 이재오 의원이 대운하 반대를 내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게 패배한 것은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친박연대의 약진에는 대운하 반대도 한몫 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가 이번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은 것을 대운하를 추진해도 좋다는 뜻으로 곡해해, 환경적인 재앙은 물론 경제적인 실익도 없는 사업을 강행하려 하다간 엄청난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한때 총선 압승이 예상됐던 한나라당이 과반을 간신히 넘긴 것은 그러한 독주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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