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11 21:27
수정 : 2008.04.11 21:27
사설
대법원이 어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사회봉사 명령’이 부적절하다며 양형을 다시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산 출연과 기고·강연 등도 사회봉사라며 이를 조건으로 정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지난해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에 대해선, 당시에도 봐주기 판결이라는 등의 비판이 많았다. 돈으로 면죄부를 산 꼴이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사법체제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였다. 대법원이 하급법원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은 것은 그런 점에서 다행스런 일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자의적이고 불평등한 법 적용은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한 것이다. 대법원 지적대로, 집행유예와 함께 내리는 사회봉사 명령은 징역형 등 자유형의 집행을 대신하려는 것이다. 다른 형벌과 마찬가지로 법률이 정한 이상으로 함부로 확대·유추 해석해 적용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원심 재판부가 “재산이 있는 사람은 재산을 공여하게 해 그게 당사자에게 부담이 되면 실형에 갈음한다고 생각한다”고까지 주장하며, 재산 출연을 사회봉사의 하나로 본 것은 월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범죄인에게 가장 적당한 교정수단을 찾아준 게 아니라, 그 범죄인이 자신에게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형벌을 모면할 수 있도록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런 판결이 대법원에서까지 받아들여졌다면 죄형법정주의나 법 앞의 평등 등 우리 사법체제를 지탱해 온 여러 원칙들이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이제 새로 형량을 정할 때도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법 원칙대로 하면 된다. 항소심 법원은 정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법 원칙’보다 ‘경제 현실’을 더 중시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법관이 할 말은 아니다. 그런 식의 ‘봐주기’가 결국 법원이 나서서 ‘황제 경영’을 용인하고 배임·횡령 따위의 불법을 눈감아주는 결과가 된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사실, 법 논리를 따르면 정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는 나올 수 없다고 봐야 한다.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법정형이 징역 5년 이상인데, 900억원 이상의 회삿돈 횡령 등 정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 대부분이 유죄로 인정된 마당이다. 이를 두고 법원이 더는 좌고우면해선 안 된다. 당당하게 법 원칙을 따라야 한다. 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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