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13 19:37
수정 : 2008.04.13 19:37
사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통합과 타협의 정치를 펴면서 경제 살리기와 민생 챙기기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통령 말마따나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러난 국민의 뜻은 바로 그런 것이다. 대통령이 정파적 이해 대신 국정에 전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섬기는 리더십을 내세운 이 대통령이 거듭 ‘일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으니, 말대로라면 기대해 볼 만도 하겠다.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방안과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회견에서 ‘통합과 타협’만 말했을 뿐, 이를 이룰 수 있는 아무런 구상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그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내부 화합과 단합 따위를 거듭 강조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말까지 했다. 통합과 타협을 위해 스스로 손을 내미는 게 아니라, 군말 말고 따르라는 종다짐으로 비친다. 곧 밀어붙이기다.
민생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5월 임시국회를 요구한 것부터가 그렇다. 이 대통령이 당장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공정거래법 개정 등 규제 완화는 대부분 대기업에 유리한 방향이다. 출자총액 제한제 완화 등 구체적 내용에선 여야와 여러 사회집단 사이에 이견이 많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졸속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다. 내수 진작에 대해서도 인위적 경기부양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는 반론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빨리 처리하라고 들이민다면, 6월에 개원할 18대 국회에서 다수 여당의 힘으로 곧바로 이를 밀어붙이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된다.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논의와 토론을 외면한 채 일방적 주장을 강요하는 게 통합과 타협의 정치일 순 없다.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이 대통령의 태도는 더 걱정스럽다. 그는 통합과 타협의 정치를 하겠다면서도, 정치 현실은 애써 외면하려 하는 듯하다. 박근혜 전 대표와 가까운 세력의 한나라당 복당 등 당내 문제에 대해서도, “사소한” 또는 “잡다한”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총선 직후 조기 전당대회 개최 움직임에 직접 제동을 건 것과는 다른, 이중적 태도다.
임시국회를 열라거나, 조기 전당대회를 말라거나 하는 태도는 과거 보았던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제대로 통합과 타협의 정치를 하려면 이런 자세부터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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