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17 20:46
수정 : 2008.04.17 23:53
사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일가 의혹 등을 수사해온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어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회장 등이 수천억원대의 조세 포탈과 배임을 저지른 사실을 확인했지만, 모두 불구속 기소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비자금 조성과 불법 로비 의혹에 대해선 제대로 살필 수 없었다면서도, 무혐의 처리했다. 밝혀낸 것은 많지 않은데, 면죄부만 안겨준 꼴이다. 지난 여섯달 동안 온 나라가 들썩였지만, 결국 용두사미다.
삼성특검팀에 공(功)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검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과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배정 등 삼성그룹의 불법 경영권 승계 과정에 이 회장의 지시나 승인,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의 기획·실행·관리, 그룹 차원의 공모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이 회장 등 실제 책임자 기소를 두고 몇 년 째 눈치만 보거나, 여러 차례 관련 고발을 불기소 처분해 의혹 덮기에 급급했던 검찰로선 얼굴을 들기 어렵게 됐다.
특검은 또 회장 일가의 종복 노릇을 하면서 불법을 일삼은 삼성 구조본의 실체도 드러냈다. 재벌의 ‘황제 경영’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는 이번 사건에서 생생히 확인됐다.
그러나, 삼성특검은 또다른 진실 앞에선 눈을 감았다. 특검은 구조본이 관리해온 차명계좌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그 이전에 이들 계좌에 들어있는 돈이 어떻게 조성됐는지, 또 그렇게 관리된 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는 제대로 밝히려 하지 않았다.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선, 의혹의 당사자인 각 계열사와 감사법인의 회계자료나 감사조서를 검토하고 관계자의 설명을 듣는 것 이상으로 수사를 한 흔적이 별로 없다. 시간과 능력이 부족하다면 검찰로 넘겨 수사할 일이다. 그런데도 섣불리 혐의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니, 결과적으로 범죄적 관행을 묵인해준 게 된다.
특검은 불법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의혹 당사자들에게 서면으로 부인 진술을 받은 것말고는 더는 본격적인 수사를 하지 않았다. 돈을 준 사람의 진술이 있었는데도 그랬으니, 수사의지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 뻗은 ‘검은 돈의 네트워크’를 뿌리뽑을 기회를 특검 스스로 버린 셈이다.
특검도 ‘봐주기’를 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특검은 이 회장 등의 혐의가 중죄라면서도, “장기간 내재돼 있던 위법”이니 “엄격한 법의 잣대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행이니 봐주자는 얘기다. 스스로 실정법을 부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적 파장’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런 주장이 나왔다면 더욱 문제다. 거대 기업집단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죄인데도 ‘현실’을 이유로 애써 외면한다면 영영 잘못을 바로잡을 수 없게 된다. 사법적·경제적 정의를 바로세울 수 있는 기회 앞에서 스스로 등을 돌리는 일이다.
이번 사건으로 확인된 삼성의 온갖 문제는 누구의 폭로 때문에 새로 생긴 게 아니다. 있던 문제가 드러났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특검이 덮는다고 덮여질 문제도 아니다. 특검이나 삼성이 모두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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