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18 19:26
수정 : 2008.04.18 19:26
사설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은 글로벌 기업 삼성의 전근대적 치부를 드러낸 내부 고발자다. 이건희 삼성 회장 주재의 수뇌부 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그룹의 핵심이었던 그의 증언은,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 만하다. 그는 또, 어떤 이들에겐 집단적 증오의 대상이기도 했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훼방꾼으로 불리고, 배신자로 폄하되기도 했다.
그제 조준웅 삼성특검팀의 수사결과 발표에서도 그런 ‘불신’의 흔적이 있다. 특검은 변호사이기도 한 김씨의 말을 못 믿겠다는 심사를 숨기지 않았다. 그가 진술을 자주 바꿔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하나하나 반박하고 있다.
김 변호사에 대한 특검의 태도는, 삼성 쪽에 대한 것과는 크게 다르다. 특검은 차명계좌에 대해 삼성의 전·현직 임원들이 입을 맞춰 “내 돈”이라고 주장하다 갑자기 “이건희 회장 개인 돈”이라고 한꺼번에 태도를 바꾼 데 대해선 일관성을 따지며 문제삼고 의심하지 않았다.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가 사들인 미술품을 두고 삼성 쪽 해명이 몇 차례나 바뀐 데 대해서도 서로 오해한 탓일 것이라고 대신 변호했다. 대부분의 쟁점에서 삼성 쪽이 최종 정리한 입장을 특검 자신의 결론으로 받아들였다.
불법 로비나 비자금 조성 의혹도 마찬가지다. 직접 뇌물을 전달했다고 밝힌 김 변호사는 그것만으로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거짓으로 이런 범죄의 자백을 할 이유가 없는데도, 특검은 이를 무시했다. 또, 입증책임이 그에게 있는 양, 그의 고발을 배척하고 혐의를 받는 당사자들의 주장을 추인하는 데 급급했다. 이는 법률가의 엄정한 자세가 아니다. 김 변호사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더 두드러졌으니, 오히려 마녀사냥에 가까워 보인다.
김 변호사의 고발은 70년 역사의 삼성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해묵은 문제들을 드러낸 것이다. 분식회계와 각종 금융기법을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에 총동원한 것부터가 전근대적인 한국 자본주의의 현주소다. 각계 기득권층에 두루 걸쳐 있다는 삼성의 로비망은, 산업화 시대 이후 우리 사회와 경제의 도약을 가로막은 ‘유착의 검은 커넥션’이다. 이를 고치자고 용기를 낸 내부 고발자의 입을 막고 매도한다면 스스로 발등을 찍는 게 된다.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라면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