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18 19:29
수정 : 2008.04.18 19:29
사설
미국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귀국하는 대로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둘 것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취임한 지 50여일 만에 나온 첫 구체적 대북 제안이다. 이 제안이 강경기조 대북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연락사무소가 당장 설치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쪽이 훗날의 문제로 생각하는데다 남쪽 정부와 북쪽 사이의 신뢰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남북 당국간 접촉도 끊긴 상태다. 연락사무소는 국가간 외교관계가 적용되기 어려운 남북의 특수한 관계에서 대사관 구실을 하게 되는데, 지금으로선 이 문제를 논의할 전제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 따라서 연락사무소 제안은 정부의 핵심 대북정책인 ‘비핵·개방 3000’처럼 일방적이고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대통령이 이 제안에 나서게 된 배경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조지 부시 대통령 등 미국 지도부는 지난주 이뤄진 북-미 싱가포르 합의를 추인한 상태다.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 및 검증과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 비핵화 2단계 조처 이행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6자 회담에서 주도적 구실을 포기하고 남북 관계를 핵 문제 진전과 연계하겠다고 밝혀온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은 한국이 남북 관계에서 소극적이지 않음을 나라 안팎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 법하다.
남북 관계를 풀겠다면 정부가 지금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10·4 남북 정상선언 이행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남북 최고 지도자가 서명한 이 선언을 이행하지 않고 남북 관계를 진전시킬 길은 없다. 남북 대화 틀은 연락사무소가 아니더라도 선언에서 합의한 여러 회담을 내실화하는 것으로 부족함이 없다. 둘째, 정부가 먼저 대북 쌀·비료 지원을 제안해야 한다. 인도적 지원에는 복잡한 조건을 달지 않는 것이 좋다. 형식에 집착하다가 시기를 놓치면 아니함만 못할 수가 있다.
이 대통령은 오늘 열리는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이런 뜻을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이번 회담이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2단계 이행을 순조롭게 마무리하고 다음 핵 폐기 단계를 준비하는 자리가 돼야 함은 물론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