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20 20:03
수정 : 2008.04.20 20:03
사설
스승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 성자다. 팽창하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영혼은 더욱 메마르고, 높아지는 부의 바벨탑 아래서 가난과 질병의 고통은 더 깊어지는 시대에, 그는 2000여년 전 예수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간 길을 따라 걸었으니, 정 추기경의 헌사는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일생을 극빈환자들에게 헌신하면서도, 그들에게 감사를 돌렸다.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는 무력한 그들이야말로, 하느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는, 1983년 철거민촌에 발을 들여 놓은 뒤부터 엊그제 세상을 뜨기까지 한 번도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다. 언론 매체는 끊임없이 그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는 단호하게 돌려보냈다. 그의 부음 기사에서 각 매체가 인용한 것은 그의 육성이 아니라 잡지에 기고한 글뿐이었다. 그러나 빛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으며, 꽃이 그 향기를 감출 수 있을까. 지난 20년간 요셉의원을 다녀간 환자는 42만 여명이나 됐다.
돈과 성공에 눈이 멀고, 낙오자와 소수자에겐 인정사정도 없는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의료 복지 교육마저 시장경쟁의 정글에 맡기려는 정부. 그 어둠을 밝힐 등불이 더욱 절실한 이때 그는 떠났다. 이제 누가 그 등불을 지킬 것인가. 남은 이들의 안타까움은 그래서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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