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21 22:32
수정 : 2008.04.21 22:32
사설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어제 정상회담에서 한-일 신시대를 개척해나가기로 합의했다. 두 정상은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국제사회에 함께 기여”하는 관계로 한-일 신시대를 규정했다. 정상간의 셔틀외교를 복원하고 경제연계협정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의를 재개하며,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공조하고 환경문제에 협력하기로 했다.
일본과 소원한 관계를 개선하는 일은 중요하다. 또 거의 300억달러에 이르는 한-일 무역역조를 생각할 때 균형잡힌 경제협력 강화 역시 시급하다. 문제는 공동발표문에 나오는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란 표현이 이번 회담에선 단순한 수사에 그쳤다는 점이다. 두 나라 사이의 껄끄러운 문제인 과거사나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은 언급조차 안됐다. 겨우 한·일공동역사연구에 대한 지원을 계속한다는 정도가 구색용으로 들어갔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어 있을 수만도, 또 "만날 사과만 요구할 수”도 없다. 그러나 새로운 한-일관계로 나가려면 그동안 왜 불편한 상태에 있었는지 직시해야 한다. 전임 노무현 대통령 역시 취임 초 새로운 한-일관계를 주창하며, 한국 쪽에서 과거사 문제를 먼저 거론하진 않겠다고 했었다. 한국 쪽의 유연한 입장에 어깃장을 논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한국 정부를 자극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장에서도 일본은 일본인 납치문제를 함께 논의하자고 하는 등 회담의 순조로운 진행에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역사 인식에 대한 문제는 일본이 할 일이고 (일본) 정치인들의 (거북한) 발언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 어느 나라나 정치인은 개인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며 일본 정치인의 망언을 용인하겠다는 뜻의 위험천만한 발언을 했다.
역사인식 문제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정상이 진정으로 한-일 신시대를 열고자 했다면 ‘실용’의 이름으로 과거를 어설프게 덮을 게 아니라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로 다짐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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