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07 19:58
수정 : 2008.05.07 19:58
사설
사람에게도 전염되는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이미 일주일 전 서울 한복판에서도 발병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일 경남, 2일 대구, 4일 강원도 춘천에서 발병이 확인됐으니, 전북 김제에서 처음 발병한 지 35일 만에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확산된 셈이다. 질병관리 능력은 차치하더라도, 이 정부에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을 막겠다는 의지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라면 조류한테서 사람으로 옮을 수 있는 전염병으로, 2003년 이후 14개국에서 379명이 발병해 239명이 숨졌다. 치사율이 63%에 이른다. 게다가 이는 변종이 무수하게 만들어지는 탓에, 언제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옮는 변종이 생길지 모른다. 이 경우 우리나라에서만, 100만명이 병원에 입원하고 3만여명이 숨질 가능성이 있다고 방역 당국은 경고한 바 있다.
그런 질병을 두고 정부 대책이라곤, 조류 인플루엔자 발병 지역 주변의 가금류를 죽여 땅에 묻는 게 고작이다. 얼마나 파묻었던지 한달여 만에 무려 650만여 마리를 죽여, 2003~04년 2년 동안 처분했던 520만마리의 기록을 간단히 경신했다. 정부 대책이 거기서 그친 탓에, 이제 전국민이 ‘고병원성’에 노출되게 되었다.
아이들이 드나드는 자연학습장에서 닭·꿩·칠면조 등이 줄줄이 폐사한 사실을 닷새 뒤에나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한 광진구청, 신고받고 사흘이 지나서야 고병원성으로 확진하고 비상경계령을 발동한 방역 당국과 서울시의 행태는 그 좋은 본보기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경남 울주 등으로 확산됐을 때, 가금류가 유통되던 재래시장에 대한 전국적 차원의 대책을 세웠어야 함에도 시기를 놓쳤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건 정부의 기본 책무다. 외침이나 범죄뿐 아니라 질병으로부터도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광우병이 걱정되면 미국산 쇠고기를 안 사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대통령이 말했다고, 국가 기관들마저 건강은 국민 각자가 알아서 챙기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하긴 굴욕적인 쇠고기 협상 뒤치다꺼리 하느라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에 신경도 쓰지 못했을 터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정부 당국은 정권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본연의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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