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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13 19:45 수정 : 2008.05.13 19:45

사설

전윤철 감사원장이 사표를 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전방위적으로 진행돼 온 정부 기관장 물갈이가, 헌법상 임기를 보장한 감사원장 교체에까지 이른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인사의 등용을 위해 헌법까지 무시하는 것 같아 착잡하다.

그동안 청와대 핵심 인사들은 직간접으로 전윤철 원장의 사퇴를 종용해 왔다.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정무직들은 재신임을 묻는 게 정치적 도의”(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라는 게 그 이유였다. 정권이 바뀌면 주요 정무직을 새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이해하는 사람들로 채워 일사분란하게 국정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몇몇 핵심 직위의 임기를 법으로 규정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과거엔 대통령이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던 검찰총장·경찰청장 자리에 임기제를 도입한 건, 검찰·경찰이 정권의 손발이 되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걸 막으려는 뜻이 담겨 있다. 마찬가지로 감사원장 임기를 4년으로 헌법에 못박은 건, 감사원이 비록 대통령 직속기구이긴 하지만 청와대 입김에서 벗어나 엄정하게 행정부의 불법·비리를 감시하라는 취지에서다.

이명박 정부의 감사원장 교체는 이런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청와대 주장대로 모든 정무직이 재신임을 묻는 게 도리라면, 우선 국회에서 임기제와 관련한 법 조항을 바꾼 뒤 교체하는 게 옳다. 명분이 없어 임기제를 철폐하자는 말은 못하면서 편법으로 임기제 기관장을 물러나도록 하는 건, 결국 그런 기관들을 정권 입맛에 맞게 활용하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새 감사원장 후보로 떠오르는 인물들이 모두 이명박 정부 출범에 공이 큰 이들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감사원 독립이란 측면에서, 전윤철 원장의 처신도 매우 부적절했다. 감사원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새 정부가 원하는 방향의 정책감사들을 앞다퉈 시행해 왔다. 이에 대해선 ‘전 원장이 남은 임기를 보장받기 위해 먼저 알아서 코드를 맞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새 정부에 잘보이려 애썼는데도 물러나게 됐으니 전 원장으로선 누구를 탓해야 할까? 고위공직자는 영혼이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헌법기관의 수장마저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고 앞장서다가 결국 떠밀려나가는 모양새가 보기에 영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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