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15 21:22
수정 : 2008.05.15 21:22
사설
한-미 쇠고기 협상의 치명적 결함이 또 불거졌다. 미국에서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로 분류된 일부 부위가 안전물질로 둔갑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식탁에 오른다는 것이다. 소의 등뼈와 목뼈 주변에 붙은 부위와 꼬리뼈 일부 등이다. 이 부위들은 우리가 즐겨 먹는 꼬리곰탕, 머릿고기, 티본 스테이크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는 국제수역사무국이 광우병 위험 때문에 교역을 금지한 것들도 있다.
이처럼 미국 농무부가 규정한 특정 위험물질이 이번 쇠고기 협상의 수입 위생조건과 다르다는 사실이 어제 국회에서 제시됐지만, 정부는 제대로 해명을 못하고 있다. 이전부터 미국은 이런 부위를 수입해 달라고 압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정황으로 보면 한국인이 많이 먹는 부위를 좀더 편하게 수출하기 위해 이런 규정을 강요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몰상식한 요구를 들어줬다면 아주 잘못된 일로서,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은 꼴이나 다름없다. 만일 몰랐다면 부실 협상을 한 것이니 그대로 둘 수 없다.
우리가 미국을 압박해 얻어냈다던 ‘강화된 동물성 사료 금지조처’가 미국이 2005년 입법예고한 것보다 완화된 것으로 드러난데다 또 이런 결함이 불거져 몹시 허탈하다. 도대체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조차 명확지 않으니, 협상을 했는지 눈 감고 사인을 했는지 묻고 싶다. 이제 미국인이 먹는 쇠고기와 한국인이 먹는 쇠고기가 같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정부의 해명도 믿을 수 없게 됐다.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특정 위험물질 및 동물성 사료 금지조처와 관련한 실책만큼은 재협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재협상은 과학적 근거나 새로운 상황이 발생해야 가능하다”고 했는데, 바로 그러한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수입을 중단하는 것은 양국이 뜻을 같이했으니 합의문에 넣어서 명확히할 일이다.
정부가 수입 위생조건 고시를 열흘 가까이 늦춘 것은 다행이다. 정부는 미국에 간 검역단이 오고 국민 의견을 검토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며 재협상은 없다고 한다. 재협상 사유가 분명한데도 재협상은 안 된다면, 여론을 무마하려는 얕은 속셈으로 고시를 연기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재협상은 필요하면 하는 것으로,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재협상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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