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16 19:15
수정 : 2008.05.16 19:15
사설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과 관련해 진퇴양난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 움직임보다 우리나라가 앞서가야 당연하지만, 새 정부 들어 나빠진 남북 관계로 운신 폭이 제한된 탓이다. 이대로 가다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나라의 발언권 또한 크게 위축될 것임이 분명하다.
신속한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이미 만들어졌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그제 최고위원회의에서 “여러 조건을 따지지 말고 동포를 위한 인도적 견지에서 지원을 검토해 달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시민단체와 야당들은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대북 지원을 촉구해 왔으며, 민간 차원의 모금 운동도 구체화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식량 지원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북쪽이 먼저 요청하면’이라는 조건을 단다. 인도적 지원이라도 일정 규모가 넘으면 상호주의를 적용한다는 정부 방침 또한 아직 바뀌지 않았다.
남북 관계가 나빠진 최대 이유는 정부가 10·4 정상선언과 6·15 공동선언의 이행 의지를 밝히지 않고 대북 압박에 치우친 데 있다. 그러면서 북쪽의 식량 지원 요청을 강요하는 것은 남쪽 정책 기조에 발맞춰 두 선언을 사실상 무효화하는 데 동의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는 큰 잘못이다. 남북 정상이 서명한 두 선언을 무시하는 것은 남북 관계를 적어도 10여 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쪽은 이런 결과보다는 어려움을 겪더라도 ‘통미봉남’ 쪽을 선택할 것이다.
식량 지원은 대북정책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따라서 식량 지원 문제의 해법도 대북정책 재정립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의지만 있다면 구체적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총리 회담을 열어 10·4 선언 이행 방안과 식량 지원 문제를 함께 논의하자고 남쪽이 제안할 경우 북쪽이 마달 이유가 있을까.
대북정책은 연속성과 일관성이 중요하다. 10·4 선언에 무리한 내용이 있다면 협의를 통해 조정할 일이지, 선언 자체를 거부해서는 남북 관계는 풀리지 않는다. 정부는 하루빨리 대북정책을 재정립해 북녘 동포의 고통을 더는 데 앞장서고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강화하기 바란다.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미국만 쳐다봐서는 지금과 같은 진퇴양난이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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