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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16 19:16 수정 : 2008.05.16 19:16

사설

“우리의 역사교과서나 역사교육이 다소 좌향좌 돼 있다고 생각한다”는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교과서 개정 논의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주요 대상은 그동안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해 온 근현대사 교과서와 재계가 지목한 초·중학교 사회과목의 경제 부문이다.

김 장관의 발언은 교과부가 그동안 물밑에서 진행해 온 개정 작업의 실상을 드러내고 이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긴 했다. 그러나 그는 교과서 최종 승인권자로서, 개정 방향을 직접 제시하는 어이없는 짓을 저질렀다. 승인권자가 방향을 제시했으니, 교과서를 내는 출판사나 내용을 기술하는 집필자로서는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의 바탕이 되는 학문적 엄정성이나 중립성을 교과부 장관 스스로가 깨 버린 것이다.

게다가 김 장관은 개정 방향을 학문적 차원이 아니라, 좌 혹은 우라는 이념적 차원으로 제시했다. 본의 아니게 학문을 이념에 예속시키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체제 아래서 경험했던 일이다. 아무리 개념 없는 정권이라지만, 학술적 사실과 이론을 이념에 꿰어맞추겠다니 그저 착잡할 뿐이다.

더 황당한 것은 교과부의 접근 방식이다.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학계에 맡겨 검토하도록 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이 정부의 교과부는 전경련이나 대한상의 등 기업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결성한 단체의 의견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 교과서를 우파 이념을 홍보하는 선전지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들 단체가 내놓은 수정 의견이란 게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다. 대한상의의 의견 중에는, 일제의 토지조사 사업의 목적은 토지약탈이 아니라 근대적 토지소유제 확립이었으며, 중국군은 중공군으로 기술해야 하고, ‘할리우드 대자본의 물량공세’라는 말은 반미적 언급이므로 삭제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이 정권은 아이들을 자본에 충성하고, 권력과 강자에게 순종하도록 기르고 싶은가 보다. 낭패할 수밖에 없는 꿈이다. 그런 꿈은 빨리 버리는 게 현명하다. 교과서는 가장 엄격하고 과학적으로 기술돼야 한다. 그러자면 학계에 온전히 맡겨야 한다. 정치권력은 그 주변에서 얼쩡거려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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