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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18 21:23 수정 : 2008.05.18 23:45

사설

갈수록 태산이다. 마치 양파껍질을 벗기듯이, 한-미 쇠고기 협정문을 살펴볼수록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줄줄이 드러난다. 우리 정부 협상팀의 전문성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보기엔, 사안이 너무 중대하고 심각하다. 협상 실패의 책임을 온전히 농림수산식품부에만 돌릴 수 없는 까닭이다. 중요한 통상협상에 청와대와 외교통상부가 개입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외부의 정치적 고려 때문에 해당 부처의 전문적인 검토가 무시되거나 왜곡됐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선이 쉽게 무너진다. 쇠고기 협상이 바로 그런 예이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서 고려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안전성’이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난 4년여간 미국 쇠고기는 우리 식탁에 제대로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협상팀이 ‘안전성’ 문제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미 개방 결정이 내려진 상태에서 협상팀에겐 정해진 시간 안에 협상을 매듭짓는 구실만 주어졌다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쇠고기 협상은 총선 하루 뒤인 4월10일 시작돼 한-미 정상회담 하루 전인 18일 타결됐다. 시점이 절묘하다. 미국 축산협회 소식지에 따르면, 이태식 주미 대사는 지난 3월31일 네브래스카 주지사 등을 만나 “국제수역사무국 가이드라인에 따라 뼈 있는 쇠고기가 (수입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정부가 전면 수입 방침을 정했으리란 심증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협상 타결 전날밤엔, 이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김중수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불러 한-미 정상회담 현안을 점검하면서 쇠고기 협상 문제도 논의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중요한 협상을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 자리에서 안전성 기준을 양보하더라도 조기 타결 쪽으로 방침을 정한 게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

대외 협상과 관련한 정부 내 논의 내용까지 밝히란 건 지나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협상이 유례없는 ‘실패한 협상’이란 게 드러난 이상,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협상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검증하는 건 꼭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나 외교통상부가 졸속 타결을 유도하거나 압박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런 지시를 내린 사람은 국민 앞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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