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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22 20:44 수정 : 2008.05.22 20:44

사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석 달도 못 돼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 파문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고,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이라고 몸을 낮췄다. 그러나 담화 내용을 살펴보면, 이 대통령이 과연 진정성을 갖고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린 것인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송구스럽다’는 말 한 마디로 지금의 국정 위기 상황을 안이하게 넘어가려는 인상이 짙다.

이 대통령은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 데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산 쇠고기 파문의 확산 원인을 ‘괴담’에서 찾고, 정부의 잘못은 ‘의견수렴 부족’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광우병에 대한 일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해 퍼진 건 사실이지만, 이것이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핵심은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 최소한의 국민 건강권을 지켜내지 못하고 미국 요구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국민 불안을 씻을 수 있는 수준으로 협상이 이뤄졌다면, 인터넷에 ‘괴담’이 오르더라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을 리 없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협상 잘못에 대해선 분명하게 사과하지 않았다. 이런 정부에 어떻게 먹을거리 문제를 믿고 맡길 수 있겠느냐, 재협상을 해서 국민이 불안해하는 부분을 제거하라는 게 다수의 요구인데, 이 대통령은 “차제에 식품 안전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괴담’을 굳이 강조한 이 대통령 인식의 밑바닥엔, 그의 낮은 지지율로 상징되는 국정 위기가 정부 잘못 때문이라기보다는 특정 세력의 조직적인 선동에 의해 심화하고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대통령 담화엔 인사 쇄신이나 정책 방향의 수정에 관한 내용은 없고, ‘모두 내 탓이오’란 식의 두루뭉술한 표현만 담겨 있다.

국민은 지금 대통령에게서 추상적인 수사를 듣고 싶은 게 아니다. 국정운영 방식과 정책 기조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런 변화 없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통과를 요청하는 건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이 대통령은 우선 쇠고기 재협상에 나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게 필요하다. 또다른 논란을 부를 자유무역협정 비준 문제는 그 뒤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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