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25 21:45
수정 : 2008.05.25 21:45
사설
최근 여권 핵심은 대운하 계획을 4대강 정비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투의 이야기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대통령도 대구·경북 지자체장들과의 모임에서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김이태 연구원이 ‘정비계획=대운하계획’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요컨대 여권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대운하 민심은 다시금 들끓고 있다. 이렇게 사기를 쳐도 되는가.
발주처인 국토해양부는 서둘러 그의 고백을 또다른 괴담으로 매도하는 작업을 벌였다. 보안각서는 내용 유출을 막기 위해 일상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라느니, 대운하 찬성논리를 매일 요구한 적 없다느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고3 딸과 고1 아들을 둔 한 가장이 최악의 불이익까지 감수하며 털어놓은 이야기를 괴담으로 돌리기엔 너무나 내용이 허약했다. 최소한 일상적인 전자우편이나 자료까지 보안 대상이 되고 있다는 고발을 해명하지 못했다. 이미 국민적 쟁점이 된 대운하와 관련된 연구라면, 논의 과정과 내용은 모두 공개돼야 한다.
‘정비계획=대운하계획’인지 여부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국토부는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치부했다. 그러나 국토부가 지금 국책연구원 다섯 곳에 발주한 연구 내용엔, 수질·물류·지역개발 등 대운하 관련 사항이 망라돼 있다. 김 연구원이 소속한 건기연이 맡은 분야는 수질·치수·이수 부문이다. 전체 계획 속에서는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4대강 정비사업만 놓고보면 전부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부문만 강조하면, 대운하 사업은 강 정비계획으로 바뀐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5개 부문은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치수 사업이 성공해 국민의 인식이 바뀌면 물길잇기(대운하)로 넘어가기로 한다면, 그것은 두길보기 차원에서 꼼수에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물길잇기를 전제로 땅을 파고 둑을 높이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것을 4대강 정비사업으로 표방한다면, 그것은 사기에 해당된다. 사업의 실체를 속였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이 글을 올렸노라고 했다. 우리 곁에 진실과 양심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안도하고 또 감동한다. 그러나 권력으로 거짓과 진실을 뒤집어버리고, 양심을 속이라고 하는 자들의 존재에 우리는 더 한층 절망하고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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