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27 20:46
수정 : 2008.05.27 20:46
사설
촛불집회에 대한 정부 대응이 걱정스럽다. 검찰은 연행된 시민들의 형사처벌 여부를 직접 결정하는 등 시국치안의 전면에 나섰고, 경찰은 강제 진압에 이어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소환하는 등 ‘배후’ 수사를 본격화할 태세다. 엊그제는 국가정보원이 참여한 가운데 십수년 전에 폐지됐던 관계기관 대책회의까지 열렸다. 공안검찰이 부활하고 국정원의 시국 개입이 재개된 꼴이니, 전두환 정권 때의 공안정국을 다시 보는 듯하다.
정부가 결국 이런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을 크게 잘못 본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이번 사태는 법과 권력의 칼을 함부로 들이댈 일이 아니다. 시민들의 항의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 결정과 그 행태에 대한 문제 제기다.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문제를 주장한 것으로, 국회와 정당 등 정치적 장치가 제구실을 다 못한 탓에 일이 불거졌다고 봐야 한다. 이런 주권자적 행위에 처벌의 칼을 들이대는 게 해결책일 순 없다.
시위가 격화됐으니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식인 검찰·경찰과 몇몇 친정부 신문의 주장도 한심하다. 이번 집회는 과거와 다르다. 참가자들이 차도를 점거해 행진했다지만 폭력도 선동도 아직 없다. 주동자도 찾기 힘들 정도로 비조직적이다. 집회 참가자들은 10대들에 이어 자영업자, 회사원, 주부 등 자발적으로 모인 평범한 시민들이다. 그만큼 집회 취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넓다는 얘기다. 이는 또한 강경 대응이 자칫 걷잡을 수 없이 큰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집회가 광장에서 차도로 번진 것도, 스무차례 가까이 촛불집회를 여는 동안 이명박 정부가 귀를 닫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온당하다. 이 정부가 국민을 대화와 경청의 대상으로 섬기기보다, 홍보와 훈육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한 채 구속과 입건을 남발하거나, 실체도 없는 배후를 잡겠다며 여론시장 봉쇄에 나선다면 더한 저항을 피할 길이 없게 된다.
지금은 평범한 국민이 왜 거리로 나섰는지를 살펴 그 요구에 응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과거 어느 시절처럼 공안의 칼을 앞세워 국민과 싸우려 해선 안 된다. 검찰 등도 그렇게 나섰던 게 자신들에게 얼마나 큰 오욕으로 되돌아 왔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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