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30 19:04
수정 : 2008.05.30 19:04
사설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거둬들이는 움직임을 보이자 환율이 나흘 연속 하락했다. 며칠 전에는 외환당국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환율을 끌어내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제는 최중경 기획재정부 차관이 “환율을 운용하는 데 물가도 중요한 고려 요소”라고 말해, 물가 안정을 이전보다 중시할 것임을 내비쳤다.
정부의 이런 방향 선회는 비록 때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한 일이다. 강만수 경제팀이 들어선 뒤 우리는 줄기차게 경제정책의 중심을 외형적인 성장보다는 물가 안정에 둘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고환율 정책부터 빨리 포기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물가 안정 없이는 민생이 무너져 서민들이 고통에 빠지고, 물가가 불안하면 성장도 제대로 이뤄내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석 달 만에 나타난 이런 정책 수정 움직임이 아직은 미덥지 않다. 정부의 정책 변화가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폭등하는 유가로 말미암은 고통을 잠시 덜어주느라 전술상 후퇴하는 측면이 강하다. 최 차관도 물가 안정의 중요성을 지적하면서도 외채 규모나 경상수지 적자 등을 균형 있게 보면서 환율정책을 펴나가겠다고 밝혔다.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라도 다시 고환율 정책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 개선을 위해 고환율 정책에 대한 미련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는 것은 우려스런 부분이다. 강만수 경제팀은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늘어나 성장률도 올라가고 경상수지가 개선될 것이란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이는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상황 인식이다. 수출과 환율의 상관관계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수출은 환율보다는 제품 경쟁력, 세계시장 경기상황 등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물론 국내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등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그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하지만, 고환율 정책이나 금리 인하로는 안 된다. 환율·금리 등 거시정책은 물가 안정에 치중하고, 자영업자 등에 대한 대책은 정교하고 미시적인 정책조합을 통해 대처하는 게 바른 방향이다. 이번 기회에 거시정책의 방향을 전면 수정해 더는 우왕좌왕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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