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01 20:29
수정 : 2008.06.01 20:29
사설
세계식량계획(WFP)이 최근 우리 정부에 대북 식량 지원 동참을 요청했다. 세계식량계획은 개도국 식량 지원과 긴급구호를 핵심 활동으로 하는 유엔 기구로, 평양에 상주 사무소를 두고 있다. 북한은 2주 전 이 기구에 긴급 지원을 호소한 바 있다.
지금 평양에서는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을 위한 전문가회의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회의가 끝나면 바로 북한 내 식량 수요 조사가 진행돼, 모두 50만톤 규모의 지원이 시작된다. 북한은 올해 100만~200만톤의 식량이 부족하며, 이미 아사자가 상당수 생겼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여전히 북쪽 식량 사정이 그렇게 다급하지 않으며 당국의 공식 요청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에 소극적이다. 그간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난해 온 북쪽의 태도 변화를 앞세우는 모양새다.
물론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을 생각지 않는 건 아니다. 정부는 최근 ‘순수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정치적 문제에 상관없이 보편적 인도주의 차원에서 추진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세계식량계획 요청에 따른 지원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북쪽과 특수 관계에 있는 남쪽의 지원은 양쪽의 긴밀한 대화를 거쳐 직접 이뤄지는 게 정상이다. 이전에도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은 몇만톤 정도였고 대부분 직접 건네졌다. 이런 지원은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지금 남북 관계가 나빠진 주된 이유는 정부가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에 집착한 나머지 공세적 대북 정책을 내놓은 데 있다. 남북 정상이 서명한 10·4 정상선언과 6·15 공동선언을 무시한 것이 그 핵심이다. 북쪽에 ‘식량지원 요청 먼저’를 요구하는 건 두 선언 무시에 동참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올바른 길이 아니며, 북쪽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거의 없다.
정부는 남북 관계를 풀고자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해결책은 먼 데 있지 않다. 10·4 선언을 최대한 이행하겠다고 밝히고, 이를 위한 회담을 제의하면 된다. 식량 지원 문제도 이 회담에서 다루면 된다. 10·4 선언에는 이미 총리 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회담 틀이 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시기다. 식량난으로 말미암은 참극이 현실화하기 전에 지원을 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남북 사이 불신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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