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03 19:42
수정 : 2008.06.03 19:42
사설
정부가 도도한 민심에 한발 물러섰다. 미국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중단을 요구하고, 답신이 올 때까지 수입 위생조건 고시를 유보하겠다고 한다. 이로써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미뤄지고, 국내 대기 중인 물량에 대해서도 검역이 중단됐다.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해법을 찾지 못하면 고시는 계속 연기된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민심을 따르려는 뜻이 있는 듯하다. 고시를 강행했다가는 정부가 온전치 못할 판이니, 국민을 이기려 들지 않고 물러선 것은 다행이다.
쇠고기 문제는 고시 철회 및 전면 재협상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검역주권을 내주고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한 ‘잘못된 협상’이기 때문이다. 협상 과정에서 치명적 실수가 있었으며, 문제가 된 몇몇 대목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국민 80% 이상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선처를 바라듯 문제를 풀어갈 게 아니라, 국민의 뜻을 받들어 당당히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독소조항인 수입 위생조건 5조는 삭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세계무역기구는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하더라도 국민 건강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으면 수입을 잠정 중단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런 중대 주권을 수입 위생조건 5조를 통해 미국과 국제수역사무국에 고스란히 넘겨줬다. 추가협의를 통해 광우병 발생 때 수입을 중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하지만 실효성에 논란이 있다. 두 나라의 뜻이 같다면 독소조항을 굳이 그대로 둘 이유가 없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30개월 미만 소도 한국인의 식습관을 고려해 내장과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 등은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 이들 부위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30개월 이상 소에 대해 동물성 사료 금지 조처를 강화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타결했지만 실제로는 완화했다. 미국이 협상 중에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기망 행위에 해당하므로 재협상 사유가 된다. 특정 위험물질이 처음 발견됐을 때는 검역중단을 못하도록 한 조항도 상식에 어긋나므로 바꿔야 한다.
재협상 못하는 협상은 없다. 협상에 하자가 드러났고 국민이 문제 삼고 있으니 재협상을 해야 한다. 미국도 한국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어가며 단계적으로 국내 시장에 접근하는 방식이 유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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