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03 19:43
수정 : 2008.06.03 19:43
사설
경찰이 촛불집회를 잔인하게 진압한 일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경찰에 맞아 다친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어청수 경찰청장 등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인터넷과 방송에선 때리는 경찰과 피 흘리는 시민의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경악과 충격은 비난과 질타로 이어진다.
동영상과 증언들을 보면, 마치 십수 년 전 권위주의 시대로 되돌아간 듯하다. 젊은 여성이 경찰 방패에 맞고, 이를 말리던 시민까지 방패에 찍혀 쓰러진다. 넘어진 여대생의 머리를 경찰 군홧발이 짓밟고 걷어찬다. 가까이서 쏘면 위험하다는 물대포를 4~5미터 앞에서 조준발사해 여러 사람이 고막과 눈을 다치게 했다. 연행된 이들은 경찰서에서 구타당하고, 다친 사람도 바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경찰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참혹한 모습들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어쩔 수 없다는 투다. 청와대 앞에서 불법시위가 벌어졌으니 엄중한 사태이며, 자신들도 많이 자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경찰 폭력 문제는 어영부영 넘어갈 태세다. 하지만, 그렇게 끝날 문제는 아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촛불집회에선 어떠한 폭력 도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비폭력·평화 시위에 진압봉과 방패·소화기·물대포를 들이대는 게 바로 폭력이다. 더구나 그로 말미암아 다친 사람까지 여럿 나왔다.
국민의 민주의식은 이제 권위주의의 사소한 잔재도 용납하지 않게 됐다. 경찰이 낡은 생각에 사로잡혀 명백한 폭력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다간 공권력의 정당성까지 흔들리게 된다. 그런 처지에 빠지지 않으려면 마땅히 폭력을 저지른 경찰을 찾아내 징계와 처벌을 하고, 그 지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과잉진압의 책임자이면서 여전히 이를 옹호하는 어청수 청장은 해임하는 게 옳다.
이 일을 계기로 경찰은 생각을 크게 바꿔야 한다. 경찰의 임무가 법질서 수호라지만, 지켜야 할 법질서는 도로교통법보다 그 상위법인 헌법과 헌법정신이 우선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촛불시위는 헌법이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 명시한 국민의 정당한 권리행사로 봐야 한다. 이를 보장하고 보호하는 것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인 공무원으로서 경찰의 당연한 의무다. 몇몇 사람의 영달과 보신 때문에 그런 의무가 방기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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