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05 19:45
수정 : 2008.06.05 19:45
사설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장 자리 빼앗기가 해도 너무한다. 공기업이나 국책연구기관뿐 아니라 이제는 예산 지원을 받는 민간단체 대표한테까지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민화협)다. 최근 통일부 당국자가 정세현 대표상임의장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한 민화협은 200여 정당·종교·시민사회단체가 모여서 만든 민간단체다. 정부가 대표자를 물러가라 마라 하는 것 자체가 오만하고 주제 넘는다.
이 정권은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을 쫓아내는 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정권 초기에 정권 실세들이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사람들은 다 그만둬야 한다”느니 “좌파 문화계 인사를 쫓아내겠다”느니 말로 엄포를 놓았던 것은 그래도 양반에 속한다. 요즈음은 사퇴를 거부하는 기관이나 단체에 대해서는 부처 감사나 감사원 감사, 심지어 검찰의 기획수사까지 동원해 협박한다. 이렇게 무지막지한 행태는 전두환 정권의 5공화국을 빼고는 유례가 없었다.
법 절차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권력 남용이자 오용이다. 헌법이나 법률에 정해진 임기가 있는데도 이를 버젓이 무시하고 ‘재신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불법적이고 자의적이다. 정치권력이 멋대로 공기관의 대표를 내쫓고 임명하려면 뭐하러 임기를 법에 정해놓았는가. 최근 촛불시위에서 ‘독재정권’이라는 구호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억지로 만든 빈자리를 ‘이명박 사람’들이 줄지어 차지하고 있다. 코레일과 토지공사, 수자원공사 사장 내정자 등이 모두 이 대통령과 가깝거나 연줄이 닿는 사람들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낙하산 인사다. 크거나 작은 다른 자리들도 다 마찬가지다. 공공성과 중립성이 생명인 방송까지 대통령 측근들을 심는 판이다.
더구나 공모 절차는 이전 정권보다 더 형식적이다. 최근 주택금융공사 사장 공모에서는 청와대에서 추천위원들에게 미리 특정인을 뽑으라고 압력을 넣었다가 이 인사가 최종 후보에서 빠지자, 다시 공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민주주의 시계를 완전히 거꾸로 돌리고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모든 공공기관장 임기제와 공모제를 없애고, 대통령이 맘대로 인사하는 것으로 법과 제도를 고치기 바란다. 그래야, 최소한 사기라는 비난은 안 들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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