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10 18:48
수정 : 2008.06.10 18:48
사설
100만개의 촛불이 전국을 밝혔다. 서울·부산·광주의 시청앞 광장으로 미처 나가지 못한 마음속의 촛불까지 합치면 역사를 밝히기에 충분한 불빛이리라. 광장으로 쏟아져나온 학생·주부·직장인·종교인·노동자 등 온갖 연령과 계층의 시민들은 연대감 속에 즉석토론을 벌이며 효율과 경제 지상주의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했다.
시민들이 이처럼 거대한 촛불을 들기 시작한 이유는 명확하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약속한 ‘쇠고기 협상’을 무효화하고, 재협상에 나서라는 것이다. 쇠고기 재협상 여부는 시민들의 민주의식에 비해 한참 지체된 정부가 민심을 따라잡을 의지가 있는지를 시험하는 바로미터가 됐다. 쇠고기 문제는 우리 주권의 문제요 국민 개개인의 건강에 직결된 문제로, 오직 재협상으로 바로잡는 길 외에는 답이 없다. 정부가 내민 추가 협의, 자율규제, 추가 협상의 잔수는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 시민들은 정부가 국가의 자존을 지키고 국민의 건강을 우선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다. 주인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말로만 섬기는 머슴을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정부는 내각 쇄신 등 여러 수습책을 모색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민들의 핵심 요구는 쇠고기 재협상이다. 시민들의 뜻을 받들어 재협상에 나서지 않고서는 지금의 난국이 풀리지 않는다. 여권 내부에서도 재협상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정부의 법제처장까지 쇠고기 협상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것인 만큼 장관 고시로 시행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선 상태다. 이명박 대통령은 결단을 내려 더 늦기 전에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한 말과 일치하는 행동이다. 행여 정부가 이번에 밀리면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등에서도 줄줄이 밀릴까 봐 몸을 사리는 것이라면,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보건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쇠고기 재협상 등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는 앞으로 계속될 수도 잦아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켜진 촛불은 꺼지지 않고 내일을 밝힐 것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광장에 바탕을 둔, 사상 유례없는 긴밀한 연대와 소통의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쇠고기 재협상 요구는 그 길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첫 사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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