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11 19:31
수정 : 2008.06.11 19:31
사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의 시민들이 참가한 6·10 촛불집회가 끝났다. 이명박 정부는 집회에 대비해 서울 세종로에 컨테이너로 연결한 거대한 장벽을 쌓았지만, 시민들은 이를 배경 삼아 즉석 토론을 벌인 끝에 장벽을 부수기는커녕 넘어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장벽을 ‘명박산성’이라고 이름붙임으로써 이미 마음속에서는 정권이 쌓은 불통의 벽을 무너뜨렸다. 성숙한 시민들의 또다른 승리다.
수십만 개의 촛불로 거리를 메우거나 각 가정이나 직장에서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소통하면서 하나가 돼 청와대를 향해 외치는 시민들의 뜻은 명백하다. 한마디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하고, 대운하와 각종 공공사업 민영화, 방송장악 시도, 불법적인 공공기관장 물갈이 등을 즉각 중단하라는 게 국민의 요구다.
그러나, 이 대통령과 이 정부는 말로는 국민과의 대화와 소통을 얘기하면서도 국민의 본질적인 요구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대답 없이 미적거리고 있다. 기껏 이 대통령은 어제 중소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 각오로 출발하겠다”는 모호한 말만 했다. 새 각오, 새 출발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야 할 것은 진솔한 반성과 그동안의 잘못에 대한 대국민 사과다. 그래야, 새 출발의 진정성을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려면 지금이라도 당장 이 대통령이 나서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따르겠다는 ‘항복 선언’을 해야 한다. 즉각 기자회견이나 국민과의 대화를 열어 쇠고기 재협상과 대운하 중단 등 국정 기조의 변화를 명백하게 선언해야 한다. 원로들과의 만남에서는 대운하를 마치 중단할 의사가 있는 것처럼 언급하면서 국민 앞에서는 명백하게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대통령이 그런 변화를 먼저 보일 때 국민도 화난 마음을 다소나마 가라앉히고, 이 정부에 일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주게 될 것이다.
이 대통령에게는 시간이 결코 넉넉지 않다. 촛불집회에서 터져 나오는 ‘이명박 물러나라’는 구호가 아직은 귀막은 이 정권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더 크지만, 국민의 분노가 쌓이면 어떤 상황으로 바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대통령과 이 정권은 국민에게 항복하는 때마저 놓치는 잘못을 범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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