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17 20:58
수정 : 2008.06.17 20:58
사설
화물연대 파업이 되풀이되는 이유의 하나는 화물연대와 운송회사들 사이에 상시적인 교섭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현행법은 화물트럭을 소유한 운전자들을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규정하고 있어, 운송료를 비롯한 여러 사안을 놓고 화물연대와 운송회사 사업자 모임이 단체협상을 벌이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니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 몇 년에 한 번씩 대규모 파업으로 물자유통이 마비되는 극단적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동자 또는 그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전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실 이 문제는 꼭 화물연대 파업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주도적으로 하루속히 풀어야 할 중요한 노동 현안 중 하나다. 화물트럭 운전자들처럼, 우리 사회엔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법적으로는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직종의 종사자들이 계속 늘고 있다. 특수고용형태 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라 불리는 이들 직종 종사자는 180여만명에 이른다고 노동단체들은 추산한다.
이들 중엔 노동자였다가 사용자의 요구로 고용 형태를 바꾸면서 ‘자영업자’로 변신해,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계약 또는 도급계약을 맺은 이들이 적지 않다. 화물트럭 운전자나 레미콘 기사들도 대부분 1990년대 초반까지는 건설회사의 정규직 노동자였다가, 회사가 트럭을 운전자들에게 떠넘기고 계약 형태를 바꾸면서 무늬만 ‘개인 사업자’로 바뀐 경우다.
유럽이나 일본 등을 보더라도, 특수고용직을 노동자나 그에 준하는 유사 노동자로 인정해 여러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게 전반적인 추세다. 독일은 1974년 단체협약법에 유사 노동자 개념을 도입해 노조 가입 및 결성 권리를 인정했고, 프랑스에서도 특수형태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97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특수고용직 종사자 수가 크게 늘고 있는 점은 시사적이다. 계약 형태를 바꾸면 기업은 근로자에게만 해당하는 노동법을 지킬 필요도 없고 산재보험 등 각종 보험의 의무를 질 필요도 없게 된다. 각종 규제와 부담을 피하기 위해 노동자와 계약형태를 바꾸려는 사용자들의 시도는 더욱 광범위해질 게 분명하다. 노동자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 범위를 넓히려는 정부와 국회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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