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18 19:37
수정 : 2008.06.18 19:37
사설
초등학교에서도 수준별 이동수업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수학 성적 등에 따라 상·중·하로 학생을 나눠 수업을 진행한다니, 사실상 우열반 운영과 다를 게 없다. 일부 교육청 산하의 초등학교에선 전국 수준 1회, 교육청 수준 4회, 학교 수준 4회 등 연간 모두 아홉차례 일제고사를 치른다고도 한다. 초등생부터 자고 나면 시험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이명박 정부의 4·15 학교 자율화 조처가 불러온 결과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끼칠 영향은 불 보듯 뻔하다. 아이들은 ‘똘반’을 피하고 열등생 딱지를 벗어나고자 시험공부에 전념한다. 왕성한 호기심은 사라지고, 학습에 대한 흥미와 창의력은 메마를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우수반에 들 수도 없다. 3분의 2 이상은 탈락하기 마련이고, 이들은 깊은 상처와 분노 속에서, 세상에 대한 불신과 미움을 내면화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만드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교육당국은 학업 성취도를 높이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이런 방식은 아이들의 학업 흥미도와 함께 결국 성취도까지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6년 국제 학력평가에서 한국 학생은 과학 과목에서 7~13위를 기록했다. 2000년 1위, 2003년 4위보다 크게 떨어졌다. 2006년 한국 학생의 과학 흥미도는 57개 회원국 학생의 평균보다 한참 밑돌았다.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한국·영국·프랑스·일본 등 네 나라 초등 4년생을 대상으로 수업 흥미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한국 초등생의 수업 흥미도나 교실 학습 참여도는 모두 꼴찌였다.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학습량이었다. 학습 욕구를 자극해 창의력을 키우려 하지 않고, 오로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주입식 교육을 하는데 어떻게 흥미도가 높아질 수 있을까. 흥미가 없으면, 어떻게 성취도가 높아질까.
더 끔찍한 결과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을 배우고 실천한다’는 설문에 대한 답변이다. ‘그렇다’고 대답한 학생은 영국 60%, 프랑스 54.3%, 일본 28%, 한국 15.9%였다. 이 정도라면 교육 파산 선언을 해야 마땅한 상황이다. 그러나 학교 자율화 조처 이후 그런 현상은 더 강화될 테니, 이 일을 어찌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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