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19 21:21
수정 : 2008.06.20 14:22
사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취임 이후 두 번째다. 이 대통령의 회견문을 읽어보면, 지난달 22일의 대국민 담화에 비해선 훨씬 진솔하고 감성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는 촛불집회를 지켜본 소회를 밝히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을 서두른 경위를 설명했다. 쇠고기 수입을 비판하는 여론을 잘못 파악한 점 등에 대해선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견문 곳곳에 지금까지의 국정운영 방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국민의 뜻을 반영해 고쳐나가겠다는 내용을 담은 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솔직한 어투의 회견문’만으로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란 어렵다. 중요한 건 변화의 믿음이다. 국민 요구를 구체적으로 정책에 반영해 기조를 바꿀 것임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은 유려한 표현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바란다.
우선 가장 큰 관심사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란 이 대통령 발언으론 국민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다. 아직 한-미 협상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국민이 우려하는 다른 문제들, 예를 들면 30개월 미만 쇠고기의 일곱 가지 특정 위험물질 제거나 검역주권 보장 문제 등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 ‘자녀 건강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 대통령이 진정 이해했더라면, 재협상이 어려운 이유만 길게 해명할 게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사안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가협상에서 담아낼 것인지를 설명해야 했다. 더구나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의 수입 금지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아직 불투명하다. 이런 정도로 국민을 이해시킬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면, 이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여전히 안이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대운하 문제에서 이 대통령은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어떤 정책도 민심과 함께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고 덧붙였다. ‘국민 여론을 수렴해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던 기존 태도에선 한발짝 진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민심은 대운하를 깨끗이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이 반대한다면’이란 단서를 단 것은, 나중에라도 상황이 바뀌면 다시 추진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왜 분명하게 얘기를 하지 않는가? 이래선 이 대통령이 달라졌다는 믿음을 갖기가 어렵다.
가시적인 시국 수습책으로 거론되는 인사개편 문제에서도 이 대통령의 변화 의지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이 대통령은 진보나 중도 쪽으로 인재 기용의 폭을 넓힐 것이냐는 질문에 “좋은 생각”이라면서도 “그러나 문제가 될 때마다 사람을 바꾸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말만으론 인사풀의 범위가 넓어질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국민이 이 대통령의 변화를 느낄 수 있으려면, <와이티엔>(YTN)을 비롯한 방송사에 측근 인사들을 심는 일부터 그만두겠다고 밝히는 게 옳다.
대통령의 진실함을 국민이 이해하는 데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 이 대통령의 어제 기자회견에선, 구체적으로 뭔가를 바꾸겠다는 실천 의지를 읽어내기가 어렵다. 자칫 화려한 말의 성찬으로만 끝나고, 기존 국정운영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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