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23 21:39
수정 : 2008.06.23 21:39
사설
촛불집회를 매도하는 정부·여당과 보수언론 공세가 도를 넘고 있다. 어제 하룻동안 정부·여당에선 입을 맞춘 듯 “촛불집회가 변질됐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홍준표 원내대표는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 중 10%만 시민이고 나머지는 프로들 같다. 생활투쟁에서 반미 정치투쟁으로 변질되는 걸 국민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재섭 대표도 “정권퇴진 운동, 정치투쟁을 하는 일부 시위꾼들의 촛불집회는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동조했다. 정부에선 어청수 경찰청장이 나서 “일반 시민들이 순수한 목적으로 (촛불집회를) 했는데, 폭력단체들 때문에 지금은 완전히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보수언론들도 맞장구를 치고 있다.
요즘 들어 촛불집회 참가자 수가 줄어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벌써 50일 정도 이어져 온 집회의 규모가 작아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중요한 건 직접 촛불을 들지 않았더라도 여전히 많은 국민이 정부의 추가협상을 불만스러워하고, 이명박 정부 태도가 별로 변한 게 없다고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집회 참가자 수만 두고서, 또 집회 현장에서 발생한 극히 부분적인 충돌 양상만 갖고서 ‘일반시민들이 등을 돌렸다’고 해석하는 건 사태의 본질을 영 잘못 보는 것이다.
변한 건 촛불집회가 아니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의 얄팍한 상황인식이 변했을 뿐이다. 촛불집회 초기인 5월2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선 “쇠고기를 계기로 반미 선동, 반정부 투쟁, 반이명박 투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심재철 의원)는 얘기가 벌써 나왔다. 그때 보수언론들은 ‘반미 좌파세력의 조직적 공세’를 소리 높여 경고했다. 촛불 수가 수만, 수십만개로 늘어나자 그 위세에 눌려 꼬리를 내렸던 그들이 이제 다시 ‘반미 폭력주의자들의 투쟁’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을 잘못 인식하면 대책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어제 “과격 폭력행위를 선동한 단체 주동자들에 대해서는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한 건, 앞으로 강경진압의 순서를 밟겠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촛불집회장엔 극소수의 폭력주의자, 반미·반정부 운동권만 남았다’고 잘못 인식하고 물리력으로 진압하려 든다면, 그 결과는 매우 심각할 수 있음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