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24 19:48
수정 : 2008.06.24 20:22
[시론]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촛불시위와 관련해 “일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시위는 정부 정책을 돌아보고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만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조점은 “돌아보고 보완하는” 데 있지 않고 “엄격대처”에 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과 어청수 경찰청장도 국무회의에서 ‘장기간 도로 점거와 과격 폭력행위자’ 등을 현장에서 연행하고, 광고 불매 운동 등을 적극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정부의 강경방침이 어디서 연유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먼저, ‘국가 정체성 도전’ 운운하는 발언은 이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시민들은 이 정부가 내팽개친 국민의 건강권과 국가의 검역주권, 그리고 후퇴하고 있는 사회 각 분야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촛불을 켜들었다. 생명권과 건강권, 검역주권, 민주주의야말로 국가가 추구해야 할 정체성의 핵심 내용들이다. 따라서 정작 국가 정체성을 흔들고 훼손한 것은 이명박 정부다. “촛불을 보면서 뼈저리게 반성했다”고 대통령이 말한 지가 며칠이나 지났다고 태도를 180도 뒤집는가. 이러니 많은 국민이 이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시위가 불법시위라고 하는 규정이나 발상도 마찬가지다. 일부 격한 행동이 있지만, 두 달 가까운 촛불시위가 매우 평화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모든 국민이 안다. 이들은 방화를 하려던 혐의자를 붙잡아 경찰에 넘기기도 했다. 그런데도 새로운 시위문화의 지평을 연 촛불시위를 집시법의 낡은 잣대로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태도는 구태의연할 뿐더러 다분히 의도적이다.
불법 폭력성은 보수단체의 시위가 훨씬 더 심하다. 각목 등 각종 폭력 시위용 물품이 발견됐으며, 평화적으로 침묵시위를 하는 사람을 집단으로 폭행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가스통에 불 붙이고 각목을 휘두르는 것에는 눈 감고, 경찰버스 위에 올라가서 깃발 흔드는 것만 문제 삼아서야 어떻게 ‘공권력’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촛불시위대와 보수단체 시위대도 거리에서 직접 충돌하는 등의 절제되지 못한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각자 자기 주장과 의사를 평화적인 방식으로 알리면 된다. 그런 성숙한 자세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가 정체성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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