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25 20:04
수정 : 2008.06.25 20:04
사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초순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8국(G8)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이후 언제 서울을 찾을지도 불확실하다. 대신 일본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다지만 의미가 크게 다르다. 한-미 관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 일어났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4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 ‘올여름 답방’ 약속 이행에 소극적으로 된 까닭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한국 내 여론이 크게 나빠진 상태에서 반미 정서를 자극할까 우려했을 것이다. 임기를 얼마 안 남긴 그가 환영받지 못하는 한국 방문을 구태여 강행할 긴급 현안도 없다. 그렇더라도 나라간 일정이 어그러진 건 유감이다.
일이 이렇게 된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의 섣부른 외교 행태가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한-미 동맹을 복원한다며 4월 한-미 정상회담 직전 서둘러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을 약속했다. 국민 건강권과 검역주권보다 미국의 시장개방 요구를 중시한 이런 태도는 전례 없는 국민 반발을 유발했다. 이제 미국도 이명박 정부가 과연 믿을 만한 상대자인지를 다시 생각하는 분위기다. 부시 대통령 7월 방한 무산은 그 여파의 하나다.
더 중요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전략적 한-미 동맹에 집착하는 한 이번과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략동맹이 이뤄지려면 두 나라는 지구촌의 거의 모든 주요 사안에서 보조를 맞춰야 한다. 그제 서울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한 고든 플레이크 미국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의 말처럼 “한국이 미국의 전략동맹이 되려 한다면 재정적·군사적으로 큰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국익과 일치한다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게다가 국력 차이를 고려할 때 전략동맹은 한국의 미국 추종으로 귀결되기 쉽다. 이는 한국의 여론을 악화시켜 오히려 한-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쇠고기 문제는 잘 보여준다.
정부가 지금 할 일은 그간의 태도를 반성하고 한-미 관계의 기본 틀부터 다시 정립하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면 채택하려 한 ‘미래 한-미 동맹 비전’도 국익과 국력에 대한 냉철한 평가에 기초해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마땅하다. 이번에 교훈을 얻지 못하면 정부는 물론 국민까지 두고두고 힘들어질 수 있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