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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27 21:14 수정 : 2008.06.27 21:14

사설

어제 촛불시위에서 일부 성난 시위대가 조선과 동아일보사 현관 일부를 파손하고, 제호를 떼어냈다. 회사 깃발 대신 쓰레기 봉투를 내걸기도 했으며, 일부 취재기자에게는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왜곡과 편파 보도에 대한 분노의 표시이겠지만, 물리력 행사는 유감스럽다. 그런 물리력으로는 왜곡을 바로잡을 수도 없거니와, 오히려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난을 부를 수 있는 탓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물리력 행사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주권자인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끝끝내 거부하고, 폭력으로 이를 밟으려 할 때 손 놓고 당할 국민은 없다. 여론 시장을 독과점한 매체들이 시종일관 거짓과 왜곡으로 정당한 표현과 행동을 불법 폭력으로 매도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최근 나타난 일부 시위대의 폭력은 한계에 이른 분노의 표시로 보는 게 온당하다.

그렇다 해도 촛불의 도덕적 정당성은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희생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왜곡과 편파보도라는 ‘언론 폭력’을 일삼아 행사한다고, 거기에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이런 촛불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는 항변도 있을 수 있겠지만, 촛불은 이미 거짓에 대한 진실의 승리 징표로 자리잡았다. 불매 혹은 광고거부 운동이 그 상징이다. 수구언론이 왜곡과 편파보도의 강도를 나날이 더 높이는 것은 이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일 뿐이다.

조·중·동도 이번 일을 마치 촛불의 폭력성과 정치성을 입증하는 것인 양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사회적 공기를 자처하는 언론이라면,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반성할 일이다.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자신의 보도 내용과 태도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조선일보>는 광주항쟁 시민을 ‘총을 든 난동자’ 혹은 ‘폭도’라고 보도하면서 신군부의 학살은 외면했다. 28년 뒤 조선일보는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경찰의 폭력엔 눈을 감고, 일부 시민의 폭력을 과대포장해 ‘폭력의 해방구’라고 보도했다. 색깔이 비슷한 집단의 가스통 난동이나 집단 폭행엔 눈감고, 경찰에 대한 시민의 항의를 ‘경찰 억류’라고 보도했다.

떨어진 회사 로고, 깃발 대신 걸린 쓰레기 봉투, 현관에 쌓인 쓰레기의 의미를 곱씹길 바란다. 어쩌면 그게 조·중·동의 오늘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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