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27 21:16
수정 : 2008.06.27 21:16
사설
검찰이 본격적으로 정권 해결사 노릇을 자임하고 나선 것 같다. 수사하겠다는 사건들이 하나같이 정권의 가려운 곳을 앞장서 긁어주는 것들이다. <문화방송> ‘피디수첩’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 수사는, 쇠고기 정국의 책임을 정부의 졸속협상 대신 언론 보도 탓으로 돌리는 데 악용될 수 있다. 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을 만들어 인터넷의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 불매운동 등을 수사하겠다는 것도, 지난달 검찰의 ‘광우병 괴담’ 수사처럼 인터넷 여론을 단속하겠다고 덤비는 게 된다. 그러지 않아도 검찰은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소환 등으로 방송사들을 압박해 왔다. 이쯤 되면 방송 장악과 여론 통제를 겨냥한 이명박 정부의 전방위 공세에 검찰이 공개적으로 선봉에 선 꼴이다.
앞뒤 안 가리고 정권 말을 좇는 듯한 모습도 보기 흉하다. 피디수첩 사건 전담 수사팀 구성은 그제 이명박 대통령의 “심각한 문제”라는 발언과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말이 있은 뒤 발표됐다. 인터넷 불매운동 단속 방침도, 인터넷의 힘이 독이 될 수 있다는 이 대통령의 말이 있은 뒤 부랴부랴 나왔다. 그렇게 이 대통령이나 여당의 말 한 마디에 들썩이면서 검찰 독립을 말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더구나 이들 사건에 대해선 검찰 안에서조차 법에 어긋난 일인지, 처벌해야 하는지, 실제 처벌이나 단속은 가능한지 등을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엄포나 압박에 검찰이 병풍으로 동원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옴 직한 상황이다. 그런 구실을 하라고 검찰에 큰칼을 쥐여준 것은 아닐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수사가 검찰의 부끄러움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인터넷에 대해 필요 최소한의 규제 이상으로 단속과 처벌의 칼을 들이대면 여론의 자유로운 소통이 막히게 된다. 피디수첩 수사 역시, 헌법상의 언론 자유를 본질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세계 언론사상 초유의 일이 될 것이다. 설령 피디수첩의 보도에 일부 오보가 있다고 해도 이는 해당 언론사나 언론계 내부에서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이런 식으로 언론의 보도내용 자체에까지 수사와 처벌의 칼을 들이댄다면 장차 모든 언론의 기사와 프로그램이 모두 수사대상이 되게 된다. 곧, 전면적인 언론 탄압이고 통제다. 검찰은 헌법을 침해하고 자신을 스스로 부끄럽게 만드는 이런 ‘청부수사’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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