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29 19:53
수정 : 2008.06.30 00:59
사설
정부가 촛불집회를 힘으로 억누르기 시작했다. 어제 오후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데 이어, 저녁엔 서울시청 앞 광장을 경찰 병력으로 에워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방향을 확고하게 잡고 있다. 심야 불법·폭력 시위를 원천 봉쇄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시위의 폭력화’를 강경 진압의 명분으로 들고 있다. 하지만 시위 현장에서의 폭력은 극히 일부분이며, 이마저 경찰의 대응 방식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작지 않다. 여전히 수만명의 시민들은 평화적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두 달 가까이 광화문을 무법천지로 만든 시위대’를 비난하지만, 시민들은 ‘두 달 가까이 외쳤는데도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의 오만함’에 분노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가 위기의 본질은 외면한 채, 물리력에만 의존해 현 상황을 수습하려 하는 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현 정권의 위기 수습 방식은 점점 더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을 닮아가고 있다. 장관들이 “일부 시위대가 쇠파이프와 망치로 경찰버스를 부수고, 쇠줄까지 사용해 경찰버스의 탈취와 전복을 시도했다”고 말하는 대목은 5공 시절 민주화 시위를 강제 진압할 때 종종 사용했던 표현들을 떠올리게 한다.
잘못된 인식으론 지금의 위기를 제대로 수습할 수 없다. 지난 토요일 서울 중심가에 다시 수만명의 시민이 모여 촛불을 켠 것은,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일반 시민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정부의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서 국민이 요구하는 수준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기에 촛불시위가 계속되는 것이지, ‘소수 과격 폭력주의자’들의 선동 때문은 아니란 것이다. 정부가 시위를 물리적으로 진압한다고 해서 사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비롯해 촛불집회를 주도해온 시민사회단체들과 대화해야 한다. 정부는 강경 진압의 정당성과 불가피성만 주장할 뿐, 한-미 추가협상 이후에도 촛불을 끄지 않는 시민들과 직접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참을 만큼 참았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건, 반격을 위한 정치적 명분 쌓기로밖에 볼 수 없다. 폭압적 진압에만 의존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정권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를 현 정부는 되새겨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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