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980년대를 규정하는 열쇳말은 ‘국가 폭력’이었다. 법과 질서를 앞세운 공권력의 폭력은 광주 학살을 시작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최루탄 피살사건으로 이어졌고, 끝내 국민적 저항으로 종식됐다. 그로부터 20년 뒤, 충돌을 막으려 누워 있던 시민들을 경찰이 짓밟고 지나갔다. 짓밟는 것도 모자라 방패로 내리찍고, 곤봉으로 두들겨 팼다.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이었던 비폭력 평화도 그렇게 유린당했다. 이것을 신호로 시민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은 전면화되고 흉포화됐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계도 폭력의 80년대로 되돌아갔다. 헌법적 권리를 파괴한 건 정부다 어제 전국 부장검사회의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은 불법 폭력 시위에 마침표를 찍을 때라고 말했다. 전날 정부는 촛불시위대를 정부 정체성을 파괴하는 세력으로 규정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공권력의 무한 폭력 시대의 부활을 예고하는 포고문이었고, 이미 저질러진 전면적인 폭력을 합리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막판에 몰린 권위주의 정권이 항용 동원하는 협박이지만, 어렵게 이룩한 민주주의를 위협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시민이 거리에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는 굴욕적인 쇠고기 협상을 통해 국민의 건강권을 무시하고, 검역주권을 포기했다. 국민적 동의 없이 진행되는 한반도 대운하, 학교 학원화,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 등은 국민의 생명이나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었다. 이런 정부에 대해 어떤 국민이 보고만 있을까. 도로를 점거한 것이 불법이라면, 헌법적 권리를 파괴한 이 정부는 무슨 벌을 받아야 하나. 게다가 이 정부는 시종일관 국민을 속이려 했다. ‘싸고 질좋은 쇠고기’로부터 시작한 거짓말은 ‘뼈저린 반성’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계속 농락했다. 추가협상으로 다시 속이려 했지만, 그 결과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위계에 의해 국민에게 재산과 건강상의 해를 끼치려 한 셈이니,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을까. 촛불시위를 두고 불법 운운할 자격이 이 정부한테는 없다.공권력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물리적 힘이다. 군은 외침으로부터, 경찰은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 그러나 공권력도 무력인 만큼 엄격한 법적 근거에 따라 공익을 위해 사용되도록 규제받는다. 법에 근거하지 않거나 사적 이익에 이용될 때는 깡패들의 조직폭력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대 정치사는 국가폭력으로 얼룩진 역사였다. 역대 정권은 공권력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행사하기보다는 개인의 장기집권과 정권유지에 이용했다. 현대사를 관통했던 민주화 운동은 사실 공권력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부문에서 지난 20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 검찰이 법무장관의 지휘권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부 아래서 검찰은, 전직 고위간부의 말대로 ‘우리는 ×다. 물으라며 문다’는 집단으로 회귀할 조짐을 보인다. 시위의 폭력 진압만이 아니다. 정권과 수구언론의 거짓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던 인터넷상의 소통과 소비자운동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에서도 나타난다. <문화방송> 피디수첩 수사를 위해 특별수사팀을 구성하는가 하면,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에 대한 해괴한 압박도 마찬가지다. 이 정권의 이해와 직접 관련돼 있는 사안이다. 정권의 시녀라는 비판이 오히려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그 결과 언론·표현의 자유는 중대한 위기에 몰려 있다. 정권의 폭력이 문제였다 촛불시위는 소통에 대한 열망의 표시였다. 이명박 정부의 일방주의와 독선이 계속되고, 정치가 제구실을 못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때론 거칠게 항의했고, 막아선 전경과 때론 옥신각신도 하고 물리적 다툼도 있었지만, 촛불시위는 소통의 열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 정부는 이런 열망을 수용하지 않았다. 반성하는 척하다가도, 돌아서면 딴소리를 했다. 이젠 경제위기론을 앞세워 이간질하고, 색깔론을 뒤집어 씌워 고립시키려 하고, 폭압적인 진압으로 입을 틀어막으려 한다. 공권력을 포함해 정부가 위임된 권력을 행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정당성이다. 정당성은 주권자의 의지가 반영될 때 확보된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봉착한 위기는 국가폭력에 의한 정당성의 훼손에서 비롯됐다. 정당성 획득의 첫단추는 국민과의 소통이다. 110년 전 2차 만민공동회에는 정부 대표도 참석했다. 지금 이 정부는 전제군주제였던 그때만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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