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02 19:44
수정 : 2008.07.02 19:44
사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초 방한한다고 백악관이 일방적으로 밝히자 청와대가 뒤늦게 이를 확인하는 일이 어제 일어났다. 백악관은 지난달 24일에도 부시 대통령의 7월 방한이 이뤄지지 못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의 연이은 외교 결례다. 정상회담 일정은 두 나라가 동시에 발표하거나 초청하는 쪽이 먼저 공개하는 게 관례다.
청와대 쪽은 백악관 보좌관이 언론 브리핑을 하면서 실수로 부시 대통령 일정을 불쑥 말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볼 여지가 없지는 않다. 이 보좌관은 부시 대통령의 다음주 일본 주요 8국(G8) 정상회의 참가 일정을 설명하면서, 이 회의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이 8월 정상회담의 토대가 될 거라고 했다. 적어도 8월 방한 발표에 초점을 맞춘 건 아닌 셈이다. 그렇더라도 방한 일정의 일방적 공개는 외교 결례임이 분명하다.
청와대는 미국이 서둘러 유감표명을 해 이해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미국이 7월 답방 무산을 먼저 발표했을 때도 ‘백악관 대변인이 기자들 질문에 솔직히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명성 설명을 했다. 정부는 두 경우 모두 별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지만, 당당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새 정부 들어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우선 정부의 전반적인 소통 능력 부족이 나라 안에서뿐만 아니라 대외 관계에서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한-미 관계는 물론이고 한-중 및 한-일 외교도 매끄럽지 못한 것이 이런 의심을 더한다. 미국이 쇠고기 문제 등을 이유로 한국에 의도적 결례를 하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가 한국 내부 사정으로 부시 대통령의 방한 일정 결정을 복잡하게 만들었으니 미국도 그에 걸맞게 이명박 정부를 대하겠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외교 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타당성과 실효성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한-미 전략동맹을 무리하게 내세워 외교적 입지가 크게 약해진 상태다. 임기 말의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외교 자원을 쏟아붓는 것도 상식에 어긋난다. 이번 일이 한국 외교를 전반적으로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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