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04 19:57
수정 : 2008.07.04 19:57
사설
국가정보원 요원이 법원을 상대로 불법 사찰을 벌이다 적발됐다. 국정원이 개입한 사건은 이명박 대통령이 한겨레신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다. 대통령의 개인적 소송에 국가기관이 동원된 꼴이니, 여러모로 온당치 않다.
국정원 쪽은 재판에 관여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관원이 담당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특별한 재판’이라며 재판 상황을 묻고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의 행동을 한 것이 바로 재판에 사실상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대통령이 당사자인데다 막강한 힘을 지닌 국정원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면 법원이 압력으로 느끼고도 남기 때문이다. 곧, 재판의 독립성 침해다. 사법부의 독립을 큰 축으로 하는 헌정체제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국정원 사찰이 이제 때와 장소, 보는 눈을 의식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도 놀랍다. 국정원과 그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등은 정당·학교·정부 등 사회 곳곳에 감시의 손길을 뻗어왔다. 법원이나 검찰에도 ‘연락관’을 빙자한 요원들이 무시로 출입하면서, 시국 사건 등의 수사와 재판에 간섭했다. 한동안 주춤하는 듯했던 국정원의 사찰은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크게 늘어나고, 더욱 공공연해졌다. 대운하에 반대하는 교수들을 연구실까지 찾아가 경위를 캐묻고 압박을 가한 게 그런 과거 회귀의 보기다. 이젠 재판을 직접 담당하는 일선 판사에게까지 대놓고 사찰활동을 벌이고 있으니, 군사정권 때보다 더하다.
국정원의 이런 행태는 명백한 위법이다. 국가정보원법은 제3조에서 국정원이 할 수 있는 국내 정보 활동의 대상을 대공·대정부 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 범죄조직과 관련된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개인 사이 민사소송 사건에 관해 판사를 찾아가 재판 경위를 묻거나 법정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이런 직무범위를 한참 벗어난 일이다. 더구나 대통령이 당사자로 있으니 직책과 권한이 함부로 동원됐을 개연성이 높다. 애초 누가 이를 지시하고 어떤 경로로 사찰이 이뤄졌는지 따져, 직권남용의 책임을 묻는 게 마땅하다.
불법과 불의는 방관하고 외면할수록 더 횡행하게 된다. 이번 일은 사찰을 당한 담당 판사의 분명한 조처로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사법부 차원에서도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분명하고도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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