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07 21:04
수정 : 2008.07.07 21:04
사설
촛불집회 압박에 나선 경찰이 시국 미사·기도회·법회를 주최한 스님·목회자·사제들까지 형사처벌할 뜻을 밝혔다. 검토 중이라고 했지만,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공개적으로 한 말이니 으름장만은 아닌 듯하다. 앞서 경찰은 시국기도회가 예정된 서울 시청앞 광장을 또다시 봉쇄했다. 광장의 천막도 모조리 철거했다. 누구든 가리지 않고 반대하는 입을 틀어막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이로써 분명해졌다.
경찰, 곧 이명박 정부의 이런 방침은 화해와 중재의 중간지대조차 없애겠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되짚어 보면, 지난 6월29일 경찰의 폭력적 강경진압은 끝없는 강경 대치와 갈등의 격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 실제 그렇게 걱정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촛불 시국미사가 끊었다. 이어 목회자와 스님들이 행렬의 선두에서 촛불을 들면서 촛불은 다시 비폭력의 위대한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정권이 국민에게 항복해 화해를 청할 수 있는 기회도, 사제·목회자·스님들이 만든 이런 평화와 비폭력의 공간에서 다시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 이들이 이끈 촛불행렬이 천 마디 구호보다 더 큰 ‘함성’을 담은 묵언과 침묵으로 정권과 국민이 다시 이어질 수 있는 끈을 마련하려 애썼음도 살펴야 한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의 경찰은 이들 목회자·사제·스님들이 불법집회를 했다고 몰아세우고 있다. 이로써 해결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까지 무색하게 됐으니, 정권 스스로 자신들이 서 있는 자리를 좁히는 게 됐다. 이로 말미암아 갈등과 충돌이 격화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이명박 정부와 그에 앞장선 경찰에 있다.
정권이 종교지도자들까지 적으로 돌려 탄압을 서슴지 않았던 예가 없지는 않다. 유신정권 때나 5공 신군부가 그렇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그런 시대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다. 언론의 보도내용 판단을 검찰에 넘기더니 이제는 종교행사인지 아닌지까지 경찰이 멋대로 판단해 처벌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야만적 경찰국가가 따로 없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도발이 정국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잘못된 상황 인식에서 비롯됐다면 더 위험하다. 역사에서 보듯 그런 시도는 당장은 반대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어도, 결국은 더 강해진 저항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명박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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