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08 20:41
수정 : 2008.07.08 20:41
사설
‘잘 되면 내 덕, 못 되면 조상 탓’이라더니 이명박 정부의 네 탓 타령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며칠 전 “외국 경제인들이 핫라인으로 ‘한국에 가도 괜찮으냐’고 묻더라”고 말한 데 이어 그저께 일본 언론과의 회견에서는 “촛불시위가 계속되면 우리 경제에 부정적 요소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촛불 책임론’을 주창하는 대통령의 북소리에 맞춰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들의 맞장구도 요란하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촛불시위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이 줄었다”고 거들었으며, 김동수 기획재정부 차관은 “촛불시위가 두 달 넘게 장기화하면서 경제·사회적 손실이 5천억원 이상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촛불집회로 말미암은 손실 비용이 1조9천억원에 이른다며 한술 더 떴다.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어려움을 촛불집회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물가와 환율 상승, 수출 부진 등의 현 상황은 이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폈기 때문이지 다른 데 이유가 있지 않다. 대다수 경제학자 등 전문가들이 물가안정에 우선을 둬야 한다고 연초부터 줄기차게 지적했는데도 이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귀를 막고는 고환율 정책을 통한 성장우선주의를 채택했다. 그래놓고 경제를 망친 장본인들이 피해자인 국민을 탓하니 소가 웃을 일이다.
외국인 투자 및 관광객 입국 감소 운운하는 것도 이만저만한 견강부회가 아니다. 올 1, 2분기 외국인 투자금액은 전년에 비해 늘어났으며,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인 지난 5월의 입국 관광객 수도 전년에 비해 8% 정도 늘었다. 지난달에는 0.4% 줄었다고 하지만, 이 역시 항공료 인상 등에 따른 자연스런 감소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해석이다.
남 탓을 하는 이 정부의 습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토해양부나 국세청의 전산 자료만 살펴봤어도 충분히 막았을 ‘고소영, 강부자’ 인사에 대해 노무현 정부가 인사 파일을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던 정권이다. 고환율 정책 실패의 책임을 장관이 아니라 아랫사람인 차관에게 지우는 등 자기들끼리도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하다. 이러니 굴욕적인 쇠고기 협상을 주도했던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이 사퇴하면서 “정치적 광란의 파도에 휩쓸리게 됐다”며 엉뚱하게 얘기한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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