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11 19:31
수정 : 2008.07.11 19:31
사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달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6월10일 광화문 뒷산에 올라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보고,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내가 즐겨부르던 ‘아침이슬’을 들었다. 국민을 편하게 모시지 못한 내 자신을 자책했고, 앞으로 새출발을 다짐하려고 한다.”
어제 국회에 선 이 대통령은, 스스로 자책하게 하고 ‘아침이슬’의 감동을 되새겨 준 바로 그 촛불시위에 맹공을 퍼부었다. 직접 ‘촛불시위’를 지칭하진 않았지만, “분열과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법과 질서가 바로서지 않으면 신뢰의 싹은 자랄 수 없다” “감정에 쉽게 휩쓸리고 무례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사회는 선진사회가 될 수 없다” “부정확한 정보를 확산시켜 사회 불안을 부추기는 정보전염병을 경계해야 한다”는 대목들은 모두 촛불집회를 겨냥한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촛불집회에 참가하거나 지지했던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태도를 돌변하는지 모르겠다. 국정 최고지도자가 자신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으면 정부에 대한 신뢰,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어디서 생겨날 수 있겠는가. “국민 신뢰를 얻는 일에 국정의 중심을 두겠다”는 공허한 약속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차라리 “청와대 뒷산에서 느꼈다고 했던 그 감정은 내 진심이 아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낫다.
국회 개원연설에서 분명하게 확인된 건 한 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혀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 이 정권의 국정운영 기조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물가 안정에 주력하겠다는 게 과거와 다른 얘기이긴 하나, 그것 역시 불황으로 빠져드는 세계 경제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일시적인 방향 수정일 뿐이다. 숱한 논란 속에서도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바꾸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고집이 그 증거다.
앞으로 현 정권의 일방적인 국정운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최근 비난을 무릅쓰면서도 친박 의원들의 전원 복당을 결정한 건 그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내 갈길을 가겠다’는 이 대통령의 국회 개원연설 기조와, 공룡여당의 국회 장악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힘으로 밀어붙이면 사라지는 건 국민의 신뢰고, 커지는 건 저항일 뿐이다. 촛불시위의 진정한 교훈을 이 대통령은 되돌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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