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14 21:08
수정 : 2008.07.14 21:08
사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일하는 국회’를 앞세워 법안의 자동 상정제를 추진하고 있다. 홍 대표는 지난주 한나라당 원내대책회의에 이어 어제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이런 구상을 공식화했다. 홍 대표가 내놓은 아이디어의 요지는 이렇다. 법안이 제출되면 1개월 뒤에는 상임위에 자동 상정하고, 그 뒤 3개월 동안 법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통과된 것으로 간주해 법사위로 넘기고, 법사위에서도 같은 과정을 거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법이든 아무리 늦어도 8개월 안에는 본회의에 무조건 올라가게 된다.
현실성도 없을 뿐더러 발상 자체가 비민주적이다. 국회의 원활한 운영을 책임지는 국회 운영위원장을 맡을 여당 원내대표가 한 발언이 맞나 귀를 의심할 정도다.
국회에서 여야가 상정을 놓고 다툴 정도의 법안이라면 그것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거나 매우 중요해서 시간을 두고 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안들이다. 또는 내용에 원체 문제가 많은 것들이다. 이런 법안들은 당연히 내용이 재조정되거나 논의 과정에서 충분한 타협과 절충이 이뤄져야 할 사안이다.
홍 대표는 그런 과정을 불필요하고 낭비적인 것으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매우 위험하다. 홍 대표 구상대로 법안을 자동으로 상정하고 처리할 거라면 선출에 많은 비용이 드는 국민의 대표가 국회에 있을 필요가 없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갖춘 각계의 전문가를 국회의원에 임명해서 이들이 일하도록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생산적이다.
게다가 제출된 법안을 무조건 논의해야 한다는 것도 터무니없다. “지난해 상정조차 안 된 법안 1100건과 상정된 뒤에 제대로 심의하지 못해 자동 폐기된 법안 3200건”을 모두 심의하려 들다가는 국회는 경중과 시급을 구분하지 못한 채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이다. 당연히 상정 이전 단계에서부터 법안을 걸러야 한다. 미국도 매년 발의되는 법안 가운데 90%가 이러저런 사정으로 본회의에 오르지 못한 채 폐기되고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곧 182석으로 늘어나는 수적 우세를 앞세워, 전례가 없고 외국에도 사례가 없는 비민주적인 제도 도입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진정 국회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목적이라면 자동 상정제를 철회하고 야당과 함께 원점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