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21 20:13
수정 : 2008.07.21 20:13
사설
저소득층 자녀가 많아지면 교육환경이 나빠지므로, 임대주택 단지 건립을 재고하라고? 미국의 흑백 분리교육 시대에 나온 청원이 아니다. 다름 아닌 150만여 초중고 학생 교육을 담당하는 서울교육청이 서울시에 보낸 공문 내용이다. 어떻게 노예제 연장선에서 행해지던 분리교육을 교육 당국이 조장할 수 있을까.
당시 교육감이던 공정택 현 서울교육감 선거 후보의 수월성 교육 신념을 돌아보면 이런 발상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수월성 교육은 문제풀이를 잘하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외국어고·과학고는 물론 자사고를 대폭 늘리고, 중등 과정에도 국제중을 신설하겠다고 한 것은 이를 위해서다. 그러나 이들 학교엔 대개 충분한 사교육이 뒷받침되는 부잣집 아이들이나 들어가고 가난한 아이들은 구색일 뿐이다. 결국, 학교 사이에는 부자 학교와 가난한 학교, 특목고나 자사고와 일반 학교로 나타나고, 학교 안에서는 우열반 분리수업으로 구체화되는 게 수월성 교육인 셈이다.
내용상 분리교육을 희망한다 해도 그것이 갖는 비교육성을 고려한다면, 내놓고 추진할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공 전 교육감은 지난해 이와 비슷한 사안을 강행한 경험이 있다. 이미 신념화된 것이다. 당시 그는 남산아파트 단지 안의 동호공고 폐교를 행정예고했다. 가난한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이 학교가 못마땅한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을 수용한 것이다. 서울시의회가 기각시켰기에 망정이지, 그는 이미 부자를 위해 가난한 아이들의 학교를 없애려 했다. 이번 강남구와 수서지역 주민의 민원은 영세민용 임대주택 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지만, 부동산값 등을 의식해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겠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공 전 교육감이 이런 사안을 어떻게 모르고 넘어갈 수 있었을까. 하지만, 서울교육청은 명의만 공정택 교육감으로 되어 있지, 국장 전결사항이어서 그는 몰랐다고 우긴다. 교육감 선거에 끼칠 영향을 고려한 것일 게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공 후보를 더 난처하게 할 것이다. 그런 민감한 내용을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면 교육감으로서 치명적인 무능을 드러내는 것이고, 직접 재가하고도 모른 척한다면 당장 후보 사퇴를 해야 마땅한 파렴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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