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24 19:44
수정 : 2008.07.24 19:44
사설
경찰청이 ‘어청수 경찰청장 동생 소유 호텔에 성매매 의혹 있다’는 방송보도 동영상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삭제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삭제된 동영상은 지난 4월 <문화방송>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된 고발 보도다. 이런 뉴스까지 마구 삭제하면, 인터넷에서 국민의 알 권리는 찾을 길이 없게 된다. 경찰의 월권 못잖게, 이를 받아들여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을 스스로 가로막은 구글 쪽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팀의 삭제 요구에 어청수 청장의 지시나 묵인이 있었는지도 따져야 한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을 보면, 게시물 때문에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을 당한 사람만이 그 게시물의 삭제 등을 요청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선 어 청장이나 그 동생이 나서야 할 일에 국가기관이 대신 나선 꼴이니 그 자체로 법에 어긋난다. 나아가 어 청장의 지시 등이 있었다면 개인 일에 국가기관을 동원한 것이니, 직권남용 혐의를 물어야 한다.
이번 일의 해악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구글이 문제의 동영상 열람을 제한한 것은 정보통신망법에 그런 임시조처를 할 수도 있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조선일보>가 자사 광고주 명단을 담은 게시글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한 데 대해선 이번과 달리 “그런 게시글이 위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삭제를 거부했다. 포털이 스스로 결정할 여지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마저도 강제하려 하고 있다. 정부는 권리침해나 명예훼손을 내세운 게시물 삭제 요청에 대해선 30일 동안 임시삭제 조처를 취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어기면 포털을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도 게시글이 함부로 삭제되는데, 이런 내용으로 법이 개정되면 무더기 삭제 사례는 훨씬 잦아지게 될 것이다. 정치권력이나 기업 등이 자신을 비판하거나 고발하는 뉴스의 확산을 막고자 이를 악용하리라는 것은 불 보 듯하다. 곧 인터넷상의 전면 검열이고, 알 권리의 봉쇄다. 국민 다수가 인터넷을 통해 정보와 의견을 상시로 교환하고 표현하는 지금의 소통 환경에선 매우 중대한 위헌적 상황이다. 이번 일은 그런 위험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국민의 입과 귀를 막는 독재시대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면 정부는 당장 개악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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