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24 19:46
수정 : 2008.07.24 19:46
사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물 유출 시비가 끝내 검찰 손에 넘어갔다. 형식적으로는 국가기록원이 앞에 나섰지만, 노 전 대통령의 퇴임 당시 비서관과 행정관 10명에 대한 검찰 고발은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가 지휘하고 조종했음이 분명하다. “기록원 자체의 판단으로는 어렵다. 긴밀하게 (청와대와) 협의했다”는 기록원 관계자의 증언을 굳이 예로 들 필요도 없이 그동안의 흐름을 보면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다.
실제로 봉하마을의 기록물 반환 뒤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공무원은 형사소송법상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하도록 돼 있으며, 대통령 기록물의 무단 유출 사실을 확인한 이상 고발하여야 한다”고 했던 말은 기록원의 고발 보도자료에 토씨 하나 안 바뀌고 그대로 담겼다.
기록물 논란은 애초부터 정치적 쟁점이 못 되는 사안이었다. 대통령 기록물 보존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열람권 보장이라는 제도와 관례가 처음으로 확립되는 과정에서 비롯된 돌출적인 문제였다. 그 정도는 기록원과 노 전 대통령 쪽이 타협해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지 않고, 청와대가 나서 전직 대통령을 공격하면서 신구 권력의 정치 갈등으로 비화했다. 더구나 청와대 하드 유출이니 뒷돈 사용 등의 청와대 주장은 모두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물론 노 전 대통령 쪽의 대응도 다분히 감정적이었다. 기록원으로부터 명백한 승낙 없이 이뤄진 기록물 복사가 문제된 뒤에도 바로 사과하지 않은 것이나 반환 방법을 놓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기록원에 가져다 준 점 등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내용물의 반환이 이뤄진 마당에 복사본을 원래 갖고 간 것 자체가 불법이라느니 공무원의 의무니 하면서 고발까지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반환이 다 됐는지 등 확인할 일이 있으면 기록원이 노 전 대통령 쪽과 협의해서 처리하면 되는데도 난 데 없이 고발한 것은 광범한 기록을 최초로 남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치 보복이라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 앞으로 원본에서 빠진 게 없는지 대조한다고 검찰이 온갖 기록물을 샅샅이 훑어볼 게 뻔하다. 일정 기간 기밀로 지정한 것을 현 정권이 다 들여다보게 되는 셈이다. 청와대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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