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24 19:47
수정 : 2008.07.24 19:47
사설
2004년 3월 국회는 우여곡절 끝에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안을 겨우 통과시켰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등 힘든 과정을 겪은 이유는 국회 법사위가 이 법안 심사를 중단한 탓이었고, 이는 당시 정부 대표로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한 행정자치부 차관이 국민적 갈등 우려 따위의 이유를 들어 반대 의견을 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 행자부 차관이 어제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취임한 김주현씨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만주벌판이나 서대문 형무소에서 목숨을 바친 항일 애국지사들 앞에서 참괴하기만 하다.
독립기념관을 국민 성금으로 지은 것은 일제 강점기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지켜내고자 했던 민족정신과 자주정신을 되살려 우리 삶의 지표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박제화된 상태로 유품이나 전시하고자 했다면 유족들이 귀한 자료를 내놓지도, 국민이 벽돌 하나씩 쌓아올리는 정성을 쏟지도 않았을 터이다. 오늘날 민족·자주정신을 살리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은폐된 친일 반민족행위를 규명하는 일이다. 독립운동사는 자주독립을 쟁취하려는 발자취와 함께 겨레를 팔아먹고, 자주독립을 방해하고, 동족을 억압했던 행위들이 함께 규명돼야 온전하게 복원된다. 그러나 광복 이후 반민족 행위자의 득세로 말미암아 규명작업이 중단됐다. 거기에 일조한 사람이 어제 독립기념관장에 취임한 것이다.
그런 김씨를 이 정부는 일찌감치 관장으로 점찍었다. 독립운동 관련 단체가 아무리 반대해도 막무가내였다. 이는 이 정부의 이념적 뿌리가 되고 있는 이른바 ‘뉴라이트’의 역사관, 곧 식민지 근대화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 보인다. 이 정부는 출범과 함께 과거사 청산과 관련한 각종 위원회의 통폐합을 추진하고 이들 위원회 예산을 줄였다. 일본에 대해서도 실용을 앞세워 ‘과거는 묻고 미래로 가자’며 납죽 엎드렸다. 하지만, 그 일본한테서 돌아온 것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정부 차원의 공식 선언이었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해병대 주둔 등 터무니없는 공포탄만 쏘아대고 있다. 그러나 확실치도 않은 경제지원에 민족·자주정신을 포기했으니, 일본이 돌아설 리 없다. 또다른 독도 사태는 피하기 어렵다. 문제의 해결은 역사적 잘잘못을 바로잡고, 독립운동의 자주정신을 되살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독립기념관장 인사 철회는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